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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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가치관

2020-02-23 (일)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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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로 20년 간의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 민선 교육위원직을 마친 후 조금 여유로워진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성인 ESL 수업에서 보조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기로 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미국에 처음 이민 왔을 때 ESL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대학교 때에는 대만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무역업에 종사하는 기업가에게 영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 적절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교육위원으로 일 할 당시에 교육청이 제공하는 성인 ESL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더 강조해왔었기에 특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기회를 우선 내가 다니는 교회가 속한 미국 연합감리교단의 여러 교회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찾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자원봉사를 신청했을 때는 이미 자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는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래도 꼭 해 보고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서 한 곳을 찾아 연락했더니 마침 보조 교사 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시작하기로 하고 자원봉사자 교사로부터 배울 겸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달 중순부터 주 중 하루 저녁 1시간 반씩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내 클래스는 중급반인데, 6명이 출석하다가 지난 주에 한 명이 추가로 등록을 해서 총 7명의 학생들이 나오고 있다. 나이 분포는 30대 후반부터 거의 70 정도까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출신 국가도 다양해 한국을 포함해 중남미, 중동, 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있다. 그리고 직업이 있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았다. 수업에서 보조하면서 느낀 점 중 가장 큰 것은 나에게는 아무리 간단한 단어, 문법, 표현이라도 학생들에게는 꼭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에는 많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함을 느꼈다. 영어를 잘 한다고 모두 좋은 영어 선생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주 전 토요일 오전에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된다기에 다녀왔다. 내가 그 날 참석한 세션 셋 중 하나는 ‘문화적 민감성’에 관한 것이었다. 교육위원으로 일하면서 페어팩스 카운티의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하기 위해 여러 ‘문화적 민감성’ 프로그램 개발과 그러한 프로그램을 위한 정책 수립, 예산, 인력 배정에 관해 오래 동안 관여해 보았지만, 나 자신이 그러한 프로그램에 실제로 참여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이 날 이 세션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은 약 20명 정도 되어 보였는데 대부분은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들로 보였지만 나처럼 이민자들도 여럿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 세션에서 오간 대화 가운데 ‘미국인의 가치관’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민자들을 가르치면서 ‘미국인의 가치관’이 기준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연한 지적이었지만, 한 편 그 때 내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얘기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 가운데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있고 이민 와서 미국시민이 된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서로 소개했을 때 들었던 것처럼 나는 한국에서 왔고 싱가폴, 푸에르토리코, 콜롬비아 출신도 있다. 우리가 이렇게 세계의 여러 다른 곳에서 왔지만 이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일원으로 미국을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의 가치관’을 이야기할 때 어쩌면 어떤 한 가치관을 미국인들의 ‘보편화’ 된 가치관으로 말하기 힘들지 모른다. 가치관은 오랜 시간을 거쳐 생성될 수도 또한 바뀔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기에 우리가 학생들을 대하면서 무엇이 ‘미국인의 가치관’이라고 일률적으로 말하는 데에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이러한 도발적 지적에 대체적으로 조용했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볼 때 내 지적이 과연 얼마나 다른 이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는지는 모르겠다. 독자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점들이 미국인의 보편적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나?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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