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의과대학 꼭 가야해요?”

2020-02-22 (토)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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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의 관심을 끈 교육 관련뉴스 하나를 읽었다. 한국의 학부모들 중에서 자녀를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소위 ‘SKY’ 대학에 보내는 것을 목표로 삼던 현상이 퇴조하면서, 전공중심으로 대학을 택하고, 그중에서도 의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보도였다.

대학선택에서 명성보다는 실용성을 중심으로 결정하는 것은 찬성할만한 현상이다. 일일생활권의 작은 나라에서, 서울에 위치한 3개 대학에 입학하느냐 못하느냐가 전국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공평치 않기 때문이다. 반면 실용성을 대표하는 전공으로 의학에 집중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많은 학부모들의 소원대로 자녀들이 모두 의사가 된다면, 그 사회는 의사과잉이 되고, 다른 중요한 전문직에는 인재 부족난이 생길 것이다.

자녀를 꼭 의사로 만들고 싶다는 부모들의 열망은 여러모로 이해할만하다. 급변하고 있는 사회에서 전통적인 직장은 빠른 속도로 변천하거나 사라지고 있고, 사람의 힘으로 해왔던 일을 로봇이 대체하고 있다. 한번 직장을 얻으면 거의 평생 수입이 보장되던 시대는 지났고, 안정된 수입이 꼭 필요한 중년에 들어서 실직하는 경우가 흔하다. 100세 장수인구가 대폭 증가하리라는 예측과 함께, 준비 안 된 노년빈곤의 비참한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예측도 준비도 확실치 않은 환경에서 의사 직은 타 직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수입이 보장된 안정된 직업이라는 생각에 많은 부모들은 자녀를 꼭 의과대학에 보내겠다고 굳게 결심을 하는 것이다.

학생이 의사와 같은 전문직을 목표로 하면 두 가지 기본조건을 갖춰야 한다. 공부를 따라갈 수 있는 능력과 그 학문에 대한 흥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의 우수한 성적이 의대진학에 충분한 조건이라 고 생각하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능력보다는 의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흥미여부가 더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의학보다는 예술이나 인문계 학문에 더 큰 관심이 있지만, 부모의 뜻을 따라서 의사의 길을 택한 ‘착한’ 자녀들도 있고, 반면 아무리 부모가 간절히 원해도 다른 전공을 택하는 ‘고집불통’ 자녀들도 있다. 이들 후자의 경우 자신의 능력과 흥미에 맞는 전공을 택해 그 분야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의학 전공을 결심하면서 명심해야할 조건이 있다. 의사 직을 돈을 많이 버는 직업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학졸업 후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산업이나 국내외 거대한 자본을 움직이는 금융계에 투신해서, 30대 초반에 이미 큰 부를 이룬 젊은이들이 주위에 있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의사는 30대 초반에야 전문의가 되어서, 이들 젊은 부자가 20대 초반에 받던 수준의 보수를 받는다. 돈벌이라는 측면에서 의사 직이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가끔 뉴스에서 돈의 유혹에 빠져 의료사기를 저지르고 자격을 박탈 당하는 의사들을 볼 때, 이들은 전공을 잘못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또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의사들이 하는 일의 큰 부분을 컴퓨터가 대신 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이런 여러 조건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충분한 대화가 있은 다음 최종 결정은 학생 본인이 내려야 할 것이다.

<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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