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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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기생충

2020-02-21 (금)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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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부 뉴저지 메이플우드의 한 극장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을 보았다. 한국영화를 미국의 시골 소도시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신기하기도 했거니와 전 세계에 도도히 흐르는 한류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영화 ‘기생충’이 제 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의 상을 휩쓸며 세계를 놀라게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필자처럼 어린 시절 기생충을 몸속에 지니고 자란 세대에게는 아직도 ‘기생충’이란 말이 주는 어감은 너무나 역겹고 징그럽기만 하다. 당시에는 채소밭에 인분을 뿌려 비료로 사용하였으므로 김치를 먹는 거의 모든 한국인들은 기생충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인데 몸 안에 기생충까지 살고 있어 알량한 영양분을 빼앗아 먹으니 기생충은 국민보건 제1의 공적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일 년에 한두 차례씩 기생충 박멸의 날을 정하고 각 학교를 통해 구충제를 무료로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기생충은 단순히 숙주의 영양분만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입으로 나오기도 하고 담도에 들어가 황달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떤 기생충은 뇌에까지 올라가 뇌를 파먹음으로써 숙주를 죽게 하기도 한다.

기생충은 사람의 몸 안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각계각층에도 인간 기생충들이 드글거리고 있는 것 같다. 서민들보다 몇 배나 많은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일은 안하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임금투쟁을 일삼는 귀족 노조원들, 정권이 바뀌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공기업의 수장이나 무슨 무슨 위원 노릇을 하면서 밥그릇이나 챙기는 비전문 경영인들, 남들이 열심히 피땀 흘려 일할 때 무위도식하며 기업의 이윤이나 국민들의 세금을 갉아먹는 이들이 모두 인간 기생충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행히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가 살아있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입각한 권력 구조를 갖춘 성숙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이다. 일시적으로 이와 같은 기생충들이 발호하고 있지만 선거라는 강력한 구충제를 사용해서 사회의 기생충들을 박멸하고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채수호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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