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있어 꿈을 꾸는 건지, 꿈이 있어 잠을 자는 건지. 현실에서는 가질 수도 없고 이룰 수도 없는 것을 꿈속에서나마 간절한 소원을 이루니, 꿈이 인생의 선물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일까. 꿈속에서는 그리운 부모님도 만나 볼 수 있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찾아보고 싶은 친구의 얼굴도 대면 할 수 있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는 대화의 창이 되고, 연극 같은 무대가 되어 마음 속 깊은 내면을 수면을 통해 내가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어딘지 모를 끝없는 망망대해 같은 길을 네 자매가 말없이 걸어간다.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건물이나 사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상하고 야릇한 기운만이 감도는 거리를 단조롭게 내가 세 언니들의 뒤를 따르는데, 홀로 덩그렇게 세워진 한 보석가게 앞에 발길이 멈추었다.
쇼윈도에 진열된 다양한 보석 가운데 오색영롱한 구슬목걸이에 눈길이 닿아 한동안 바라보다 종종걸음으로 언니들의 뒤를 쫓아갔다. 앞서가던 바로 위 언니가 슬며시 다가와 가방 속을 뒤지더니 긴 구슬 목걸이를 말없이 건네주었다. 그러고 보니 세 언니들은 모두 똑 같은 구슬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나 혼자 허전한 목이 언니의 마음에 걸렸는가 보다. 그때의 내 속내는 그랬다.
한동안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을 본 큰 언니가 내 곁으로 와서 속삭인다. “얘야, 그건 묵주 기도할 때 손에 들고 간절히 소원을 비는 목걸이야. 아마도 너 혼자 종교가 다르니 화해의 선물인 것 같은데 이제야 너희 둘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질 것 같구나.”
비몽사몽 눈을 떠 보니 꿈이었다. 그 언니와는 우연히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 사이라 다른 언니들이 우리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던 터였다. 놀라운 일은 이런 신비스런 꿈이 계기가 되어서일까 말 못하고 끙끙거리던 그 동안의 속앓이가 어렵사리 풀리게 되었다.
흔히 한 집안에 자매들이 많다 보면 마음이 통하는 끼리끼리가 짝을 짓게 마련이다. 자라면서 막내인 나는 매사에 외톨이 같다는 느낌을 오랫동안 가졌는지 결코 만만치 않는 바로 위 언니에게 살갑지 않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틈이 생기고, 서로가 조금씩 등을 돌린 채 어색하게 세월만 한참 흘러가 버렸다. 어릴 때의 언쟁쯤은 돌아서면 쉽사리 잊어버리게 마련이지만, 성인이 되고 환경에 변화가 생기면 문제는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더니, 얽힌 실타래가 풀리고 막혔던 대화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위 언니와 나는 똑같은 신앙심과 더해가는 연륜으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주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대체로 가벼운 꿈은 잠에서 깨고 나면 그사이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지만, 이번 꿈속에서 마주친 기이한 현상은 정녕 꿈이 가져다 준 아름다운 선물인 것 같아, 오늘 밤은 또 어떤 꿈과 마주 하려는지 살포시 눈을 감고 단잠을 청해 본다.
<
윤영순 / 우드스톡,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