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에서 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자 없는 연주회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연주곡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 4악장이었다. 지휘자들이 괜히 멋스럽게 손만 휘젓는 것 같은데 정말 지휘자는 필요한 존재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주겠다는 장난기어린 발상에서 한 실험이었다.
단원들이 연주한 브람스 교향곡은 소리의 강약과 템포의 폭이 큰 곡이었다. 지휘자 없는 연주는 결국 엉망이 됐다. 연주가 모두 끝난 후 지휘자가 청중들에게 한 말. “저는 놀고먹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그저 놀고먹지 않는 사람 정도가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심장이라 할 만 하다. 다이내믹과 템포 그리고 밸런스를 조율해 곡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2014년 타계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음표 뒤에 숨은 우주를 찾는 여정”이란 말로 지휘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거창하게 우주까지 들먹일 만큼의 역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휘자에 따라 같은 곡이 다르게 재탄생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100여명 내외의 개성 강한 연주자들을 통솔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작업은 음악적 재능은 물론 강한 리더십까지 요구한다, 게다가 지휘하는 행위 자체에 따르는 체력적 소모 또한 대단하다. 그래서 비교적 최근까지 여성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통념이 클래식 음악계를 지배했다.
2013년 러시아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는 “남성이 앞에 설 때 오케스트라는 훨씬 더 잘 반응한다. 여성이 포디엄에 서면 연주자들은 다른 것들을 생각한다”며 여성 지휘자들을 대놓고 폄하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런 편견과 차별적인 분위기 속에서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포디엄에 서는 여성 지휘자를 보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유리천정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평단과 대중의 인정을 받는 여성 지휘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성 지휘자를 부르는 존칭은 ‘마에스트라(Maestra)’(남성은 마에스트로)이다. 1999년 버펄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 최초로 미국의 유력 악단 여성 음악감독이 된 조앤 펄레타와 볼티모어 심포니의 음악감독인 마린 올솝, 그리고 2005년 빈 필하모닉을 지휘한 첫 여성지휘자로 기록된 호주 출신 시몬 영 등을 선구적인 마에스트라로 꼽을 수 있다.
클래식 음악 등 공연계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영국의 ‘바흐트랙(bachtrack)’이 최근 발표한 세계 100대 지휘자 가운데 8명의 마에스트라가 포함됐다. 고작 8%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난 2013년 단 한명이 들어갔던데 비하면 비약적인(?) 증가가 아닐 수 없다. 그 한명은 볼티모어 심포니 음악감독인 마린 올솝이었다.
남녀 통틀어 2019년 가장 바빴던 지휘자는 라트비아 출신 여성인 앤드리스 넬슨스로 한 해 동안 무려 132회의 연주회를 지휘했다. 3일에 한번 꼴로 포디엄에 오른 셈이니 여성들의 체력 문제는 더 이상 시빗거리가 될 수 없을 듯하다.
21세기는 소통과 공감에 바탕을 둔 리더십을 요구한다. 특히 오케스트라가 좋은 소리를 내려면 구성원들 간의 조화와 조율이 기본이 돼야 한다. 이런 역할에 비춰볼 때 오케스트라 앞에서 지휘봉을 흔드는 여성들이 더 많이 늘어날 것임은 쉽게 전망해볼 수 있다.
첼로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변신해 현재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장한나와 지난해 96년 역사를 지닌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의 첫 여성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김은선 등 지휘자로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여성들이 여럿 있다, 100대 지휘자 명단에서 이들의 이름을 보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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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