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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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낚시에 담긴 추억들

2020-02-19 (수) 김인숙 /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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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우리 가족은 집 근처 할시온 호수에서 무지개송어 낚시로 봄을 시작한다. 언젠가 큰 애가 자기 손으로 운동화 끈을 맬 수 있게 되자, 남편은 아이에게 낚싯바늘 매는 법, 낚싯밥을 끼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은 차마 어린아이들을 내게 맡기고 혼자 낚시를 하러 갈 수 없어서, 좀이 쑤시던 차였다. 본인의 낚싯대를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퇴근 후면 아이들을 낚시용품을 파는 가게에 데리고 다니며 낚시에 관한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밤마다 알록달록한 색과 여러 가지 물고기나 벌레의 모형을 한 낚시찌에 현혹된 듯 한두 개씩 사서 들고 들어오며 행복해했다.

할시온 호수는 큰길에서 보면 나무들로 우거진 숲 같으나 막상 입구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전경의 호수가 나온다. 매해 봄이면 메릴랜드 천연자원 부서에서 메릴랜드 내의 백여 군데의 호수에 무지개송어를 투입한다. 할시온 호수도 그중의 하나다. 겨우내 언제 낚시 가냐고 안달을 하던 아이들이 봄볕이 좀 따뜻해지니 낚싯대를 들고 호수로 앞장섰다. 무지개송어를 꼭 잡는다는 보장은 할 수 없었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낚시꾼들로 북적거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다는 말이 있듯 낚시 첫날에 낚시의 대가인 아빠의 낚싯대는 조용했지만, 두 아이는 무지개송어를 잡아 올렸다. 동시에 아이들은 낚시라는 묘미에 덜컥 낚이고 말았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그 호수를 ‘우리 호수’라고 명명했고, 우리 호수에서의 낚시는 한 해의 봄을 시작하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남편과 나는 호수 전체가 거의 한눈에 보이는 곳에 마치 낚시 본부석을 만들듯이 둥지를 튼다. 그곳이 소위 ‘우리 자리’다. 모든 걸 주위에 늘어놓고 낚시 의자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한 가닥의 낚싯줄을 던져놓고, 무심코 지나는 송어가 우리 낚싯대에 걸리기만 기다린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한결같은 풍경이었다. 유유히 흐르는 호숫물과 우리 낚싯대 주변을 헤엄치는 자라들이 혹시나 우리 낚싯대에 걸릴까 봐 마음 졸이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가끔 자라가 풍덩거리는 것을 큰 물고기로 착각하고 흥분하기도 한다. 물 위에 떠 있는 호수 이끼들도 낚싯줄을 끌어당기면 마치 안면이 있는 척 흐물거리며 따라 올라온다. 청둥오리들도 다시 만나 반갑다는 듯이 꺽꺽 소리를 내며 첨벙첨벙 물속으로 뛰어든다. 햇살도 반짝이는 은물결로 반기는 듯하다.


호수는 그대로인데 달라지는 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땐 우리 곁에서 낚싯대를 던져놓고 기다렸다, 아무 물고기라도 잡힐 때마다 팔짝팔짝 뛰고 소리치며 좋아했다. 그 소리에 주변 낚시꾼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지난 기억들이 병풍의 화폭처럼 펼쳐진다. 갓 낳았을 때의 신기함, 첫발을 떼던 순간, 뒤뚱거리며 걷고 뛰던 모습, 말하기 시작할 때 느꼈던 귀여움, 그들의 성취감으로 나를 행복하고 자랑스럽게 느끼게 해 준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느새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 독립해 떠나가니 마음이 허전하고 우울해진다. ’아무리 바빠도 애들이 품 안에 있을 때가 좋은 때’라던 어른들 말씀이 이제야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없고 나의 모든 일과를 아이들 스케줄에 맞추느라 퇴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헐떡여야 했다. 정신없이 바쁜 그 시간이 어떻게 좋을 수 있냐고 반문했었다. 이미 큰 아이는 대학으로 떠나가 버렸다. 이어서 작은 아이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입춘이 지났다. 새봄 맞이를 해야 할 때가 가까워졌다. 곧 아이들이 빠져버린 봄맞이를 남편과 단둘이 해야 한다. 우린 낚시에 송어가 잡히길 기다리는 연습을 많이 했으니, 아이들이 찾아와 주길 기다리는 것도 잘 할 수 있으리라.

<김인숙 /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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