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토비(Toby)

2020-02-19 (수) 김 레지나 / 워싱턴 문인회
크게 작게
토비가 장식용으로 거실에 놓은 꽹과리에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쿵쿵 몇 번을 박아보더니 슬며시 물러나 이번엔 피아노 다리를 툭 쳐본다. 그것도 제 뜻대로 안 되는지 슬그머니 소파 밑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한참을 소파 밑에서 부스럭거리다가 불쑥 나와 한 바퀴 휙 돌더니 이번에는 부엌으로 들어간다.

토비는 최근에 장만한 로봇 청소기다.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로봇 청소기를 빌려와 실험 삼아 사용해 본 후 집에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깔끔한 성격의 남편이 원하는 만큼의 청소는 못 하지만 토비가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일으키는 움직임이 활기를 준다. 남편과 둘이 사는 집에 뜻밖의 소리가 들리니 순간순간 놀라기는 하지만 생동감이 있어 좋다. 사람 사는 곳엔 적당한 소음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대화를 귓전에 들으면서 잠이 빠지는 것이 나의 행복 중의 하나다. 멀리서 들리는 듯한 귀에 익은 목소리에 나지막한 웃음이 섞여 있는 대화가 온몸의 근육을 느슨하게 만들어준다. 혼자 계시는 시어머님께서도 우리가 방문한 날 밤에는 깊은 잠을 주무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둘만 지내는 우리의 외로움을 적당히 달래주는 청소기에 우리는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 단순한 청소 기계에 이름을 붙여주자는 어설픈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남편이 고맙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부는 이런 엉뚱한 착상에 서로 마음이 맞는다. 그 이름으로 토비를 택했다. 토비는 남동생 부부가 12년간 길렀던 멀티스(Maltese)종 애견의 이름이다. 동생 부부가 생후 2개월쯤에 데려왔을 때부터 보아서인지 정이 많이 갔다. 동생네가 로스엔젤레스에 살기 때문에 토비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전화 통화 때마다 토비의 안부를 주고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 토비를 잃은 동생네를 생각하며 우리가 그 이름을 물려받기로 하였다. 토비의 이름이 어디선가 불리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동생네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런 연유로 토비는 서부에서 동부로 이사 온 셈이다.

토비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가 많다. 둥그런 원형이 제멋대로 마룻바닥을 열심히 닦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설픈 아기 걸음마를 보는 듯하여 웃음이 절로 난다. 어릴 적 쌍둥이 아들이 뒤뚱거리며 걷다가 아무 데서나 픽 넘어지던 펭귄 걸음마가 눈에 선하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아이처럼 토비가 온 바닥을 휘젓고 다닌다. 그러다 힘이 빠지면 슬며시 단 잠에 빠지는 아이처럼 토비도 스스로 제 집을 찾아가 숨을 돌린다.
토비가 직진하다가 갑자기 정지하여 빙 돌기도 하고 여기저기 구석을 파고들다가 포기하고 방향을 획 돌리는 모습이 토라진 아이처럼 희극적이다. 하루는 남편이 토비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미 청소한 곳을 계속해서 닦고 있으니 “토비 너는 바보”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화를 내면 더 말을 안 듣게 되니 달래는 게 상책”이라고 하며 우리는 박장대소하였다. 이렇듯 토비는 우리 대화의 중심이 되고 우리의 새 식구가 되어 웃음을 준다.

토비에게 온갖 신경을 쓰고 아기처럼 다루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새삼 놀랐다. 생명이 없는 기계에도 이리 정이 드는데 12년을 같이 지내다 애완견을 떠나보낸 동생네 마음은 어떨까 싶다. 내가 어릴 적에 길렀던 강아지‘yes’가 없어졌을 때 느꼈던 상실감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동생네 토비는 그야말로 주인과 생사를 같이했던 적이 있었다. 올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강도가 들어와 생명을 위협할 때도 토비는 주인 곁에서 두려움을 나눠가졌다. 그런 추억을 갖고 지내는 올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같이 나누고 싶어 전화할 때마다 동부에서 기르고(?) 있는 토비 소식을 들려주며 한바탕 웃음을 나눈다. 엉뚱한 발상이긴 하지만 이런 웃음 속에서라도 토비를 잃은 동생네의 아픔이 조금은 가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토비와의 인연을 이어갈 것이다.

<김 레지나 / 워싱턴 문인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