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본명은 에릭 블레어다. 1903년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한 살 때 영국으로 건너와 명문 이튼 고를 나오지만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인도 경찰에 지원해 버마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일하면서 제국주의의 실상을 체험한 그는 경찰직을 사임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이를 고발하는 소설과 에세이를 남긴다. 그의 첫 소설 ‘버마의 날들’(Burmese Days)과 ‘코끼리 쏘기’(Shooting an Elephant) 등이 그것이다.
그 후 파리로 건너가 접시를 닦는 등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영국으로 돌아와 방랑자 생활을 계속한 그는 가장 선진국으로 불리는 프랑스와 영국에서조차 저소득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체험하며 이때 경험이 그를 사회주의자로 만든다. ‘파리와 런던에서의 밑바닥 생활’(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은 이때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1936년 스페인에서 내란이 벌어지자 그는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의 민병대원으로 자원해 출전한다. 그는 프랑코 군과 싸우다 목에 관통상을 입을 정도로 모든 걸 바쳤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트로츠키 분파주의자’란 비난과 함께 해당행위를 이유로 한 기소였다. 남아 있었더라면 다른 동료들과 처형이 불가피했을 때 탈출해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지식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던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스탈린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고발한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것이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다.
그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꿈꾼 사회주의자였지만 그 최대의 적은 사회주의를 위장한 전체주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1936년 이후 내가 쓴 모든 중요한 글은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사회 민주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란 말에 그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소련 공산주의를 풍자한 ‘동물 농장’(Animal Farm)과 전체주의 위험을 경고한 ‘1984’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고전으로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1949년 쓰여 진 그의 마지막 작품인 ‘1984’는 ‘빅 브라더’ ‘더블싱크’ ‘뉴스피크’ 등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냈다. 미래의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노예제가 자유’고 ‘거짓이 진리’며 ‘전쟁이 평화’가 된다.
오웰은 폭력으로 국민들을 짓누르는 독재의 하수인들 못지않게 언어를 비틀어 허위를 진리로 둔갑시키는 어용 지식인들을 증오했다. 그는 간결하고 명백한 언어의 중요성과 짧게 할 수 있는 말을 길게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정직성이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다 스탈린주의의 실상을 목격하고 반 전체주의의 선봉에 선 헝가리 소설가 아더 케스틀러는 오웰의 “타협을 모르는 지적 정직함은 때로는 그를 비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적었다. 케스틀러의 ‘정오의 어둠’(Darkness at Noon)은 러시아 혁명에 몸을 바친 노 혁명가가 혁명이 성공한 후 어떻게 처형되는가를 그린 걸작이다.
한국에서는 요즘 공정과 정의를 기치로 내건 정부가 실제로 산 삶이 공정과 정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을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여론의 거센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게 한 일이 있었다. 그 후임으로 법무부 장관에 앉은 인물은 정권 실세에 겨눈 칼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수사검사들을 모두 좌천시키고 이를 사법개혁이라 불렀다. 비리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인물은 고위공직자 비리를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위 공직자 수사처를 자신을 기소한 검찰총장을 벌하는데 쓰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집권한 여당은 자신을 비판한 칼럼을 실은 교수와 신문사를 형사 처벌하겠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당 대표라는 사람은 자기 명의로 고발장이 접수됐는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한다. 여당은 친여 시민단체와 언론들마저 비판에 가세하자 마지못해 고발을 취소하면서도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오웰은 살아생전 친소 지식인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혀 죽도록 욕을 먹었지만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소련 체제와 자신이 꿈꾸는 이상사회는 양립할 수 없음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되는 해다. 그를 비난하던 어용 지식인도, 소련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메시지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시간을 이기는 거짓은 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