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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과식하지 않고도 체할까?

2020-02-12 (수) 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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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윤 한방칼럼

한의원에 방문하는 가장 흔한 이유중의 하나라면 단연 속이 답답한 체기를 빼먹을 수 없을 것이다. 식후에 속이 더부룩해지면서, 명치와 머리가 아프고, 설사나 변비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트림이나 방구에서도 심한 악취가 나는게, 꼭 음식이 식도나 위장 어딘가에 걸려서 안 내려가고 있는 것만 같다면 이는 흔히 말한 얹힌 증상, 즉 체증이다.

체증 치료의 기본은 뚫어주는 것
음식이 꼭 어딘가에 걸려 있는 듯한 답답함과, 불편함이 그 주 증상이기에 한의학에서는 ‘막힌다’는 뜻을 지닌 ‘체(滯)증’이라는 병명을 붙이고, 그 치료 또한 막힌 것을 뚫어 주는데 집중이 된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위장기능을 항진시켜 음식이 빨리 소화되도록 하기 위한 약재를 사용하기도 하고, 위장의 움직임을 자극하기 위해 사지말단에 침자극을 가하거나, 복부에 직접적으로 마사지나 뜸을 통한 자극으로 위장과 대장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식이다. 이러한 치료법들의 가장 큰 장점은 초반에만 제대로 행해진다면, 거의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단 체했으면 한의원으로…’ 라는 명제를 상식처럼 체득하고 있다.

체했을 때 잘 먹고 잘 쉬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하지만 체했을 때 내시경을 통해 식도와 위장을 들여다보아도 식도나 위장을 가득 채워 막아버린 음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대의학은 ‘체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체증으로 유난히 심하게 고생하며 내원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체증이 시작되었을 때 일반 병원으로 처음 방문하였던 이들이다.
체했을 때 병원을 찾으면 일반 병원에서 하는 여러 검사에서는 딱히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별다른 치료도 받지 않고 그저 ‘잘 먹고 잘 쉬라는’ 엉터리(?) 조언을 따르다 오히려 치료시기만 놓치고 증상을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체증이 생겼을 때 잘 먹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차라리 처음 체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24-48시간 금식을 하면서 소화기관을 쉬게 해주었다면, 대부분의 증상이 저절로 왠만큼은 좋아졌을 텐데….

음식 때문에 체하면 식체, 기분 때문에 체하면 기체
한의학에서는 일단 체증을 크게 직접적인 원인에 따라 식체(食滯)와 기체(氣滯) 두 가지로 구분한다. 식체(食滯)란 기본적으로 음식을 급히 먹거나 과식했을 때, 또는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었을 때 소화기관에 지나친 부하가 가해져 나타나는 소화기 관련 질환이고, 기체(氣滯)는 음식 자체보다는 불편한 마음으로 인해 소화기가 긴장되고 ‘기가 막혀버림’으로 소화가 못 시키게 되는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질환이다.
쉽게 말해 체증을 길거리에 차가 너무 많아 길이 막혀버린 것과 같은 상태로 비유하자면, 식체는 실질적으로 많은 양의 차가 갑자기 몰리는 통행량의 증가로 인해 교통체증이 일어난 상황을 의미하고, 기체는 자동차의 통행량은 늘지 않았지만 도로공사와 같은 이유로 인해 갑자기 길 자체가 좁아져 교통체증이 일어난 상황을 의미한다.

체증의 주 원인에 따라 달라지는 치료법
그래서 음식물이 위장에 가하는 부하가 직접적인 병의 원인인 식체에는 현대의학의 소화제와 같은 방법도 의외로 잘 듣지만, 기체같은 경우는 그 원인이 음식이 아닌 마음에 있으므로 신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현대의학적인 치료법들은 영 효과가 신통치 못하다.
민간 요법으로 흔히 행해지는 손가락 끝을 따는 행위가 바로 이 기체를 뚫기 위한 침법을 응용한 것인데, 가벼운 체증에는 꽤나 그 효과가 강력하고 즉각적이다. 반면, 기체가 아닌 순수하게 과식, 폭식 같은 물리적인 부하로 인한 일어난 식체의 경우는 손가락 끝을 따는 방법이 별 효과를 못 본다. 그러니 체증이 있는데 많이 먹은 것도 급하게 먹은 것도 아니고 증상이 심하다면 꼭 한의원을 먼저 찾는 것이 좋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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