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인들이 민족적 정체성으로 똘똘 뭉쳐 가장 열광한 때는 아마도 2002년 월드컵 대회 때였을 것이다. 그해 6월 박지성, 안정환, 이영표, 황선홍, 이운재 … 그리고 히딩크가 혈육처럼 가깝게 느껴지고, 코리아타운 거리마다 붉은 티셔츠가 물결을 이루며, 새벽잠 반납하고 경기 응원하느라 충혈된 눈으로 웃음 가득하던 그 몇 주, 한인들은 매일 매일이 축제였다.
고단하고 지루하던 이민의 일상에 ‘월드컵’은 마술과 같이 등장해 개개인의 삶을, 미주한인으로서 집단의 삶을 압도했다. 가슴이 뛰고 신바람이 나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행복한 6월을 그해 우리는 모두 함께 보냈었다. 화산처럼 폭발하던 흥분과 열정의 근원은 민족적 일체감. 수십년 미국에 살아도 사라지지 않는 민족적 동질감이 애국심으로 분출되었다.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들이었다.
지난 9일 또 다른 역사가 탄생했다. 이번 무대는 오스카 시상식장이었다. 한국영화 ‘기생충’이 오스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일대사건이 일어났다.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92년 오스카 역사상 처음 있는 일, 한국영화가 오스카상을 탄 것은 101년 한국 영화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봉준호 감독이 경쟁한 감독들이 얼마나 쟁쟁한 거장들인가. 마틴 스코세이지(‘아이리시맨’), 토드 필립스(‘조커’), 샘 멘데스(‘1917’),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등 시대의 대가들을 제치고 그가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다. ‘역사적’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하지 않다.
오스카 시상식이 열린 저녁, 코리아타운은 축제의 장이었다. 식당마다, 술집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부문별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함께 긴장하고 함께 환호했다. 집에서 시청하던 많은 한인들은 타민족 친구 친지들로부터 ‘축하’ 메시지, 전화를 받느라 분주하기도 했다.
“생전 처음 (오스카에) 등장해서 상을 휩쓸다니, 한국은 정말 대단해!”라는 축하인사에 한인들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기생충’에 대한 평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어도 ‘한국영화가 오스카 수상’이라는 경사 앞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물보다 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역사의 탄생은 많은 경우 우연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연’은 우연히 생겨나지 않는다. 우주의 흐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상황들의 흐름이 ‘역사’를 탄생하게 만들곤 한다.
‘기생충’의 수상은 기본적으로 탁월한 작품성, 부의 양극화/불평등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 덕분이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봉 감독이 지적한 ‘1인치짜리 자막 장벽’ - 그 문화적 심리적 저항을 무너트리는 상황들이 근년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비영어권 특히 아시아 영화에 대해 무관심/무시로 일관하던 할리웃이 인식의 장벽을 조금씩 허물게 만든 변화이다.
세계를 흥분시키는 K-팝, 한류가 그 한 축이고, 2015년부터 불기 시작한 백인일색 오스카에 대한 저항(#OscarsSoWhite)이 다른 한 축이다. 아카데미 회원으로 여성과 소수계, 외국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얀 색만 눈에 들어오던 아카데미가 다양성을 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오랜 숙원이던 오스카 수상의 역사를 썼다. 이제 물꼬는 트였다. 더 많은 한국 영화들이, 한국감독들이 세계무대에서 주목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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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