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미국 항공사들은 중국 운항을 전면 중단했고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 바이러스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급기야 맨해튼 차이나타운 전철역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던 아시안 여성이 한 흑인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병에 걸린 xx”이라는 욕설을 퍼붓고 때리다가 다른 여성이 말리자 도망가는 동영상이 지난 2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져가자 아시안들은 너도 나도 아시안 혐오사태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는 뉴욕시내 지하에 거미줄처럼 얽힌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수십만 아시안들에게 곤혹스러운 일이다. 한인들은 타인종이 보기에 중국인과 외모상 별로 구별이 안 간다. 교육당국으로 아시안이 많은 학교는 폐쇄하라는 청원이 1만5,000명에 달하고 버스나 전철 안에서 기침을 했다가 주위사람에게 수모를 당하고 있다. 뉴욕시경은 최근 마스크를 쓴 아시안을 대상으로 이같은 증오범죄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한 상태다.
사실 한인을 비롯 아시안들은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닌다. 날씨가 추울 때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감싸면 한결 따뜻해진다. 한국에는 미세먼지 방지용을 비롯 다양한 디자인에 검정, 블루, 파랑 등 갖가지 색상의 패션 마스크가 많다.
그런데 미국인을 비롯 타인종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면 바이러스 보균자이거나 위험인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한인들은 마스크를 쓰고 싶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로 오인받을까 두렵고 이번 지하철 사건 이후 인종 혐오주의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 긴 목도리로 입과 코를 완전히 가리라는 요령을 서로 알려주고 있다. 한인과 중국인이 주로 가는 뉴욕일원 한인마트와 은행에서는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고 마스크 착용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등 신종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바이러스 질환은 천연두이다. 뉴욕 자연사박물관에는 잉카문명 유적복원 모형과 아즈텍 문명의 거대한 태양의 돌이 전시되고 있다. 이 유적들을 보면 1438~1533년 전성기를 이룬 잉카 대제국의 8만 군대가 168명의 스페인 군대가 들여온 천연두에 속절없이 쓰러진 역사가 떠오른다.
멕시코에서 높은 문명을 자랑한 아즈텍도 깨끗한 환경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이 천연두에 감염되면서 1529년 스페인의 코르테스에게 정복되었다.
지구의 온난화와 자연 개발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을 쉽게 만들면서 2002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2019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등 계속 새로운 감염병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0년대 들어 6번째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언, 국제적 협력을 당부했다.
그래도 우리가 기댈 곳은 이 험난한 위기를 타파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들, 방호복에 마스크와 장갑을 끼었으니 무겁고 숨쉬기도 힘들뿐더러 하루에 수없이 소독을 해야 하니 손도 엄청 거칠어졌을 것이다. 우한 전세기에 탑승을 자원한 승무원들, 숨은 환자를 찾아내야 하는 공무원들, 뒤에서 궂은일을 다 하는 자원봉사자들, 하루빨리 백신 치료제를 찾고자 잠을 잊은 연구진, 다들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신념, 사명감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왜 이리 못하냐고 질책하지 말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자. 이럴 때는 “열심히 하고 있으니 다 잘될 거예요.”하는 격려 한마디면 된다. 1978년 WHO는 ‘더 이상 지구에 천연두 바이러스가 없다’고 선언했다. 머잖아 사람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사투에서도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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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