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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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코리안”

2020-02-03 (월) 김해종/목사·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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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의 기념일이 지났다. 킹 목사는 미국의 흑백 차별 종족주의(Racism)를 타파한 인권 운동가였을뿐 아니라 흑인들로 하여금 ‘노예의 후손' 이라는 치욕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다”, 나는 “블랙(black)이다”는 인종적 정체성과 자존감을 갖게 해주었다.

우리도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정체성과 자존감은, 한국에서 살 때에는 특별히 생각 하지 않았으나 외국에 나와 여행을 하거나 이민자로 살면서 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한다. 일반적인, 개념적인 것이 아니요 실존적인, 근본적인 면에서 “나는 누구냐” 하는 문제,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감은 심리적으로 현실 속에서 우리의 생활 모든 면에 영향을 준다.

본인은 1961년(군사혁명이 난 해) 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후 미국 사람들에게서 “당신은 어디서 왔소” (어느 나라 사람이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1963년 오하이오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뉴저지 서쪽에 있는 포트 머리 (Port Murray) 라는 시골에서, 미국인 교회를 목회 하게 되었을 때 이야기다. 온 지 얼마 안 되어 수퍼마켓에 처음 갔다. 젊은 백인 캐시어가 아주 나를 반가워 했다. 나는 웃으며 “당신 나를 아시요?” 했더니 “어, 당신, 저 중국식당에서 일하는 보이 아니요?” 라고 묻는다.

나는 좀 어색해서 “아니요, 난 이 동네 감리교회에 온 새 목사요” 라고 대답했더니 “아유, 미안해요, 그럼 자빤니스(일본인)시군요” 한다. 나는 아니요 “아이 엠 코리안” 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이 없다. 코리안에 대해서 전혀 인식이 없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 큰 전쟁을 겪고 세계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 중에 하나로 지도에서도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반도였다. 그 젊은 백인이 그런 나라를 알 리가 없다.

조금 한국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은 625 한국 전쟁과 연결 하고 “노스 코리아냐 사우스 코리아냐?”고 물었고, 조금 더 안다는 사람은 ‘군사 혁명을 한 독재주의 국가’로 알고 있었다. 그때 “아이 엠 코리안” 이란 정체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며, 독재자라고 무시하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인식이 달라 지고, 한국에서 만든 상품들이 시장에 많이 나오면서, 그 인식은 차차 달라졌다. 현대차가 들어 오고, 삼성전자 제품을 접하게 되자, 미국의 여러 학자들이 한국의 잠재력과 발전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되고, 그런 저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코리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80년 초에 나온 로시바움(Rush baum) 이 쓴 ‘변해가는 파워의 지축: 오일시대 이후의 세계'라는 책에서 일본 소니와 경쟁하는 삼성에 대한 예언을 했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서 일본 소니를 곧 초월 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며 삼성 회장 이병철씨는 '20세기의 밴더빌트 (Vanderbilt) ' 리고 할만한 기업가라고 극찬을 했다.

이 책을 읽고 감동한 흑인 감독 (Nichols)이 내가 뉴저지 연회에서 감독 후보가 되자 미국 감리교회 50명의 감독 중 중국계와 일본계(2세나 3세)가 있는데 이젠 한국인 중에서도 감독이 나와야 한다며 나를 도와 주겠다고 했다.

한국은 산업적으로 성공한 한강의 기적을 낳고, 88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코리안''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ㅁ시작했다. 또한 신생국 중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성공한 모범적인 나라가 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머리 좋은 한국인 이라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알게 된 오늘, 이제는 “아이 엠 코리안”이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면서 살게 되었다.

이제는 미국 사람들이 나를 보면, 먼저 “아- 유 코리안?” 이라고 묻게 되었으니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갖게 해준 우리 나라에 감사 한다.

<김해종/목사·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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