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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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이 주는 교훈

2020-01-31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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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 첫 한 달이 지났다. 겨우 한 달인데 한참은 된 듯 아득하다. 같은 하루라도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의 체감 길이가 긴 것은 전에 접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해 들어 새롭고 큰 사건들이 연속 터져 하루하루가 긴박했다.

이란과 당장이라도 전쟁이 터질 듯 긴장감 속에 처음 한두 주가 지나고, 연방상원의 트럼프 탄핵재판으로 연일 정국이 소란스럽더니, 이 모두를 한순간에 시들하게 만든 핵폭탄 급 사건들이 터졌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죽음과 중국 발 우한폐렴 확산이다. 스포츠계 우상의 죽음으로 미국 특히 LA는 깊은 상실감에 빠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세계인들은 삶이 마비되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조건을 생각하게 만든다.

“브라질의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일어날 수 있다”는 ‘나비 효과’가 지구촌의 일상이 되었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72년 한 학회에서 ‘카오스 이론’을 강연하며 처음으로 쓴 표현이다. ‘카오스’라는 낯선 과학을 쉽게 설명하느라 그는 ‘갈매기가 일으키는 태풍’을 예로 들다가 보다 시적인 ‘나비’로 바꾸었다고 한다. 기상학 분야에 갇혀 있던 이 말이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일상용어가 되었다.


중국 후베이 성 우한 시 - 삼국지에 나오는 형주 부근이라는 그곳이 세계의 눈총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 우한 시민 누군가의 기침이 ‘나비’ 되어 중국 전역은 물론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인접국을 넘어 미국, 프랑스 등 세계 10여 개국에 ‘토네이도’를 일으켰다. 바이러스(2019-nCoV) 감염 확진자가 근 8,000명에 달하고, 사망자(중국내 170명)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결국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에 앞서 항공사들은 중국노선 운항을 취소했고, 삼성 구글 등 대기업들은 중국내 사무실을 폐쇄하거나 중국출장을 금지했으며, 여행사들은 중국관광을 중단했다. 파장이 경제전반에 미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중국을, 세계 각 곳을 카오스로 만들었다. 첨단의학, 첨단과학 시대에도 바이러스 하나 침투하면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 생명체로서 인간의 조건이다. 한편 첨단테크놀로지로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위협이 수천 수만배 확대되는 것이 사회적 동물로서 또 인간의 조건이다.

갑자기 세상은 바이러스 감염 부류와 비감염 부류로 갈라졌다. 중국은 고립되고, 우한은 그 안에서 또 섬으로 고립되었다. 우한 시민들은 안에 갇혀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에서는 자국 내 중국인 배척현상이 일어나고, 캐나다 등지에서는 모든 아시안을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미국에서도 중국계 학생들은 눈치가 보여 학교에도 못 갈 지경이다.

한국에서는 우한에서 철수한 유학생과 교민들을 죄인 취급하고 있다. 위험지역에 고립되었다가 무사 귀환한 동족에 대한 애틋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염’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면서 야만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사회의 이동성과 연결성의 역기능 탓이다. 유사 바이러스로 역시 중국 발이었던 2003년 사스(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때보다 확산속도가 빠른 것은 당시에 비해 중국과 세계 각국 간 인적교류가 훨씬 많아진 때문이다. 거기에 세계인들을 촘촘히 연결시켜놓은 SNS가 가짜 뉴스와 헛소문을 마구잡이로 퍼트리면서 가히 ‘공포 바이러스’로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위기상황이 닥치면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기어이 살아남으려는 생존본능의 흔적일 것이다.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단 한마디는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피하고 싶은 죽음이 때로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찾아드는 지를 보여준 것이 코비의 사고이다. 남들 100살 살 때 120살은 거뜬히 살듯 건장하던 그가 41세에 생을 마감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어느 한 순간 동전이 뒤집히면 죽음이라는 것이 유한한 존재로서 인간의 조건이다.


코비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삶을 즐기던 중 세상을 떠났다. 수퍼스타로서의 농구무대에서 은퇴한 후 가정에서 아빠로 남편으로 얻는 소소한 행복, 투자하면 성공하는 사업의 재미, 시와 동화를 쓰고 만화영화를 만들며 맛보는 즐거움, 넉넉한 재력, 거기에 자신을 쏙 빼닮아 농구 잘하는 둘째 딸을 선수로 키우는 뿌듯함 등. 한때 이혼 위기를 겪었던 아내와도, 재산문제로 불화했던 부모와도 사이가 좋아져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싶을 때 죽음은 찾아왔다.

2020년 2월을 맞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그렇게 가까이 있는 것, 우리 중 또 많은 사람들은 3월을 맞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확실하게 주어진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 죽음을 의식하면 삶은 달라진다. 이 생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삶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 져야 할 것이다. 오늘 그 일을 하고, 오늘 그 사람들과 함께 하자.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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