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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 사고

2020-01-28 (화)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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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공포증(Aviophobia)이라는 것이 있다. 비행기를 타려면 겁부터 나는 사람들이 미국인 중 12.7%(2018년 채프먼대학 조사)나 된다. 공중에 떠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도망 갈 수도 없고 어쩌나, 비행기가 혹시라도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들이다.

이와 관련해 종종 나오는 말이 있다. 비행기 타고 가다 죽을 확률보다는 자동차 타고 공항으로 가다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말이다. 실제로 미국 국내선은 지난 2009년 이후 한 번도 추락사고가 난 적이 없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 2015년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비행기가 추락할 확률은 540만분의 1 정도이다.

번개에 맞을 확률(120만분의 1)이나 상어의 공격을 받고 죽을 확률(370만분의 1)에 비해도 훨씬 낮은 수치이다. 현대 비행기는 대단히 안전해서 비행 중 죽을 걱정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기우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항공사들에 소속된 상업용 비행기에 한한다. 개인이 소유한 자가용 경비행기나 헬리콥터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반 비행기 범주로 분류되는 이들 경비행기 사고는 생각보다 잦다. 연방 교통안전 위원회에 따르면 연간 미국에서 일어나는 경비행기 사고는 평균 1,500건, 그 결과 450명 정도가 목숨을 잃는다.

그런 사고 중 하나가 지난 26일 남가주의 칼라바사스에서 일어나 미 전국이 슬픔에 잠겼다. 프로농구의 전설적 스타인 코비 브라이언트(41)가 자가용 헬기를 타고 가던 중 추락사했다. 헬기 안에는 아빠를 닮아 농구를 잘했던 둘째 딸 지아나(13)와 같은 농구팀 친구들 그리고 코치, 조종사 등 9명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 사망했다.

일요일 아침, 이들은 함께 농구 연습을 하기 위해 코비의 맘바 스포츠 아카데미로 향하며 재잘재잘 즐겁게 이륙했을 것이었는데, 짙은 안개가 이들의 생의 발목을 잡았다. 너무 이른 죽음, 너무 안타까운 죽음들이다.

자가용 경비행기는 부와 모험심의 상징이다. 돈 많고 일정 바쁜 사람들이 자가용 헬기나 경비행기를 이용하고, 모험심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 비행기를 조종한다. 해리슨 포드 등 할리웃 스타들 중 상당수가 아마추어 조종사들이다.

이들 비행기 사고가 잦은 것은 일차적으로 조종사 책임이다. 자동차 운전자가 깜빡 신호를 못 보거나, 과속을 하거나,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나듯 경비행기 사고도 일차적 책임은 대개 조종사에게 있다. 상업용 비행기와 달리 일반 비행기 조종사에 대한 자격규정은 허술하고, 허술한 만큼 위기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대표적인 상황이 악천후. 폭우가 쏟아지거나 안개가 짙어 앞이 안보이면 사고 위험은 높아진다. 산이나 절벽을 피하지 못하고 부딪치는 경우, 불량부품으로 인해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휘발유가 떨어져 추락하는 경우도 미 전국에서 매주 거의 2건에 달한다.

이번 코비에 앞서 존 F. 케네디 주니어 부부, 가수 존 덴버, 뉴욕 양키스 피처 코리 라이들, 연방상원의원 폴 웰스톤, 골프선수 페인 스튜어트 등 많은 스타와 유명인사들이 경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관련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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