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변화한 서울의 풍경들

2020-01-25 (토) 김영중 수필가
크게 작게
서울을 방문할 때면 늘 북창동 골목에 있는 한국은행 옆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그곳에서 묵는다. 근처의 남대문 시장, 시청부근, 광화문 거리는 큰 변화 없이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혼자서도 길을 잘 찾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인근의 인사동 거리, 교보문고, 명동 등도 걸어서 갈 수 있어 편리한 곳이다.

서울 풍경은 몇 년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 전에 없던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신축건물들뿐 아니라 구역마다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에는 맑은 개울물도 흐르고, 녹색 나무들이 우거진 벤치에 앉아 바람소리, 물소리 등 자연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멋스럽게 꾸민 쉼터에는 운동기구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모든 시스템이 젊은 사람들 위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네 식당에서 겪은 해프닝이다. 음식점에 들어가 잔치국수를 주문하려니 셀프오더라며 입구 쪽에 있는 머신을 가리켰다. 카드나 스마트폰 결제를 해야 하고 현금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카드를 지참하지 않고 나왔기에 나는 머쓱해져 식당을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음식점은 물론 마켓, 버스, 택시, 편의점 등 모든 곳에서 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몇 백원짜리 물건을 사는데도 카드를 사용했다. 재래시장을 제외하고는 거의 현찰을 사용하지 않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명동에 가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들끓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넘쳐나는 줄은 몰랐다. 명동은 차가 없는 거리로 젊은이들이 물결을 이루며 붐비는 거리다. 그 명동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들은 대로 중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호객행위도 중국말, 상점 안으로 들어서면 “ 어서 오세요” 라는 인사도 중국말로 했다. 남대문 시장 뒷골목 음식점들까지 한글과 중국어로 된 메뉴를 벽에 붙여 놓았고 종업원들은 간단한 중국어 회화를 하며 친절했다.

내가 투숙한 호텔의 손님들 역시 거의 중국 관광객이었다. 로비나 커피샵에서 들리는 것이 중국말이어서 중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호텔은 지난해 보다 수입이 늘었다며 경제 불황 속에서 쓰러지지 않고 버티게 해준 일등공신은 중국 관광객이라고 호텔 직원은 신나는 얼굴로 말을 했다.

명동은 내가 대학시절 즐겨 다닌 향수의 거리다. 예술인들이 몰려들던 그 시절의 명동은 낭만의 거리였다. 술집은 은성, 다방은 돌체가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다. 우리는 그들의 인생, 철학, 시랑이 들어있는 작품을 읽으며 성장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시절 명동이 그립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먹거리, 화장품, 의류, 관광객만 넘칠 뿐 낭만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인사동 거리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는 있지만 아직도 고화랑, 고서점, 전통찻집, 공예한복 점 등 옛 것들을 보듬고 있다. 눈길 머무는 곳마다 시간의 더께가 앉아 있다. 오래된 서울의 모습을 곳곳에 보존하고 있고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과 낭만이 서려있다.
언제나 변화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공존한다. 내 조국의 변화에도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국에 가는 것은 외국을 보는 게 아니라 제 얼굴을 보러 간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겹쳐 떠오른다는 것이다.

고국에서 서울의 변화하고 발전한 풍경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왠지 쓸쓸했다. 옛것에 대한 향수에서만은 아니다. 이미 떠나온 그래서 되돌아갈 수 없는 시공에 대한 아쉬움과 이제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한국문화를 간직한 채 미국 땅에 뼈를 묻는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영중 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