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설이 되었다. 황금돼지띠인 기해년이 영원히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지혜와 풍요를 상징한다는 쥐띠 경자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매년 해가 바뀌면, 육갑순서에 따라 새해의 명칭과 새해를 상징하는 동물이 소개되고, 그 해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쥐띠, 소띠, 호랑이띠 등의 별칭을 얻는다. 비슷한 연배의 한인들끼리 서로의 나이를 알고 싶을 때, 무슨 띠냐고 물으면 상대방의 나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신기한 것은 최첨단 과학이 발달한 21세기에도 아직 띠를 통해서 사람의 성격, 운세를 예측하려는 관습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재미삼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리라는 생각이다. 서양에서도 일년을 12개의 기간으로 나누어 각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과 그 기간 중 해와 달, 성좌의 위치를 연결시켜 개인의 성격과 운세를 점치는 점성술이 있다.
육갑을 기반으로 한 동양의 철학이나, 태양과 성좌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풀어보는 서양의 점성술 모두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측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본능적 욕구에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초 어느 한가한 오후 10간과 12지를 맞춰서 60개 해의 이름을 적어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즉시 알 수 있는 정보이지만 녹슬어 가는 머리를 훈련시킬 겸해서 “갑을 병정 무기경신 임계”의 10간과 “자축 인묘 진사 오미 신유 술해”의 12지를 종이에 적어놓고, “갑자, 을축, 병인, 정묘” 식으로 짝을 맞추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년도의 이름을 적어나갔다.
마침내 종이 위에 60개 년도의 이름이 나열되었다. 나열된 이름들을 보고 알아차린 사실은, 어떤 년도의 이름은 친숙한데 여러 다른 년도의 이름은 생소하다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병인양요, 갑오경장, 경술합방 등 한국 역사상 큰 사건이 일어났던 년도의 명칭들은 친숙한 반면에 내년 2021년의 명칭인 신축년은 생소한 이름이었다.
역사적인 사건의 공식 명칭에 육갑 중 해당년도의 명칭을 따라 붙이는 것은 편리한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은 1592년 임진년에 일어났는데, 그후 400여 년 동안 임진년이 7회나 더 있었다. 이들 7개의 임진년 중 왜란이 또 있었다면 어떤 년도의 임진왜란을 지칭하는지 혼동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 후에는 중요한 사건에 육갑명칭 대신 8.15, 6.25, 5.16같이 날짜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역시 100년이 지나면 중요한 사건의 년대와 순서를 기억하기 어렵다. 공식명칭에 서기 년도를 사용한다면 혼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한자 세대가 아닌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 상태에서 세계 공용인 서기를 쓰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 조상들이 삶의 의미와 운세를 제시해주는 지침으로 사용했던 ‘육갑’이 언제부터 “바보 짓, 웃기는 짓”이라는 조롱으로 격하되었는지 유감스럽다. ‘육갑한다’를 어떻게 해석하든 나는 정초에 육갑을 했고, 그 과정에서 과거를 향한 향수를 느낀 것도 사실이다. 경자년 쥐띠 해에 모두 소원 성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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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