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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의 서글픔 혹은 즐거움

2020-01-21 (화)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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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 사는 노년층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혼자 밥을 먹는 것이다. 젊은 층과 달리 노년에 혼자 살면 서글픈 게 많다. 외출했다가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도 서글프고, 혹시라도 밤중에 쓰러지면 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불안하니 또 서글프다. 거기에 밥까지 혼자 먹으려면 서글프다 못해 처량해진다.

혼자 밥을 먹으려고 시장을 보고 조리를 하고 상을 차리는 것이 다 서글프지만 그중 싫은 것은 혼자 먹는 것이라고 한 70대 남성은 말한다.

“음식이라는 게 만드는 즐거움도 있고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건 누군가와 같이 먹는다는 걸 전제로 할 때이지요. 같이 어울려서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식사의 즐거움입니다. 적막하게 혼자 앉아서 먹는 건 진정한 의미의 식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혼자 먹는 밥- ‘혼밥’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일단 부정적이다. 특히 한인들은 식당에 혼자 가는 걸 대단히 거북해한다. “혼자 앉아서 먹느니 안 먹고 만다”고 할 정도이다. 그래서 혼자 먹을 때는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끼니를 때운다고 말한다. 간단하게 라면으로 때우고, 전날 먹다 남은 음식으로 대충 때운다.

그렇게 삼시 세끼 혼밥을 하면 건강에 나쁘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다. 한국의 고려대 연구팀이 2014년~2016년 19세 이상 성인 1만 3,9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가정의학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다.

혼밥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다룬 이 내용을 보면 하루 세끼 혼자 밥 먹는 성인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식사하는 성인보다 정신적 신체적 건강 측면에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 혼자 먹다 보면 편식 과식 위험이 높고 고독감 불안감 우울감이 생길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혼밥은 얼마나 많이 먹는지, 무엇을 먹는지 그리고 기분이 어떤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한 연구에서도 혼밥은 정신질환을 제외하고는 불행감을 느끼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먹다보면 강한 연대감과 함께 기분이 풀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혼밥을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아니라는 견해들도 있다. 어쩔 수 없어 혼자 먹느냐, 선택에 의해 혼자 먹느냐에 따라 혼밥은 서글픔도, 즐거움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쁜 일정 속에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시달리다 보면 누구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따금 혼밥 하며 잠시 숨 돌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출장 중 어느 낯선 도시에서 홀로 식사하는 호젓함은 평소 누리기 어려운 낭만이 될 수도 있다.

혼밥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미국인들의 경우 지난 12개월 전체 식사 중 거의 절반은 혼자 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1인가구가 늘고 있고, 가족들 역시 아이부터 어른까지 저마다 바빠서 한자리에 모여앉아 밥 먹기가 어렵다. 근무 중 책상에서, 운전 중 자동차 안에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잦다. 혼밥은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되고 있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은 혼밥에도 적용된다. 이왕 혼자 먹어야 한다면 즐겁게 먹자.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 외롭다 생각하는 대신 호젓함을 즐기자. 그러면 혼밥도 맛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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