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계절엔 일기예보를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게 캘리포니아지만 겨울엔 다르다. 비도 오고, 눈도 내리고, 오래 있으면 따가울 만큼 햇살이 강할 때도 있다. 그래서 겨울엔 날씨 따라 내 하루가 정해지기도 한다.
해가 나온 날엔 동네 산책을 다녔다. 감사하게도 집에서 편한 걸음으로 10여 분쯤 걸으면 아메리칸 리버에 닿는다. 새소리 들으며, 연한 초록으로 싹을 올린 잡초들에 눈을 호강해가며 한 시간쯤 강을 끼고 걷다 보면 마음이 참 좋다. 비가 오는 날은 청소를 했다. 집 안 창문 다 열어 빗소리에 청소기 소리 파묻어서 밀고, 먼지도 닦았다.
바람 부는 날엔 서점엘 간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바람 부는 날은 씻기도 싫고, 특별히 일을 만들어 하고 싶은 생각도 나질 않는다. 바람 때문에 마음이 엉클어져 그런가보다.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 여미고, 서점 문을 열 때까진 종종 후회도 한다. 하지만 일단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웅성거리던 마음이 잦아든다. 따뜻한 조명과 각양각색의 책 표지들로 을씨년스러웠던 풍경은 금세 꽃피고 새 우는 작은 정원이 된다. 사그락거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사람들의 헛기침소리 같은, 서로를 배려하는 거슬리지 않는 소리들, 몸짓들. 거기에 구운 빵과 커피 향까지 느껴질 때면 “오늘도 잘 왔구나” 바람 때문에 헝클어진 마음이 가지런해진다.
보더스(Borders)가 문을 닫은 것도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작은 서점이 하나둘 문을 닫더니, 급기야 그 큰 사이즈의 서점마저 문을 닫았다. 놀라긴 했지만, 책은 인터넷으로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그때 조금씩 재미를 붙이던 전자책 세상은 문 닫는 서점의 충격을 잊게 했다. 하지만 그 맘은 잠시였다.
살 건 아니어도 소설, 잡지, 음반 코너 곳곳을 한 바퀴 돌며 뒤적이고, 들어도 보고, 커피 한 잔 사들고 책 읽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느껴지는 그 감정이 곧 그리워졌다. 그리움이 사무치면 30분쯤 걸리는 다운타운에 있는 반스 앤 노블(Barnes & Noble)까지 나가기도 했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열정도 이런저런 핑계에 사그라들고, 서점 나들이를 잊어갈 즈음, 기대도 하지 않았던 쇼핑몰에 몇 년 전 서점이 들어섰다. 참 좋았다.
바람이 부는 날은 서점에 가기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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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혜 전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