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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주 하원의장 취임식

2020-01-19 (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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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룡 칼럼

지난 1월 8일 버지니아 주 하원의 개원 첫 날에 하원의장이 새로 선출되어 취임했다. 이 취임식에 초청을 받았다. 누가 새로운 의장이 될 것인지는 이미 여러 주 전에 결정됐던 것이어서 사실 당일의 선출 절차는 일종의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또한 주중에 열리는 행사라 참석이 부담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다녀오기로 했다.
새로 의장으로 선출된 아일린 필러콘 의원은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구 출신이다. 작년 11월 선거 후 차기 하원의장이 될 것으로 결정되자 자신의 하원의장직 인수위원회에 나를 포함시켜 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는 차원에서라도 다녀오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내가 목격할 수 있었던 하원의장 선출 과정은 나에게 격 높은 정치 문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필러콘 의장은 400년 버지니아 주 의회 역사상 최초의 여성이자 첫 유태인계 의장이다. 사실 선수(選數)로만 따지면 중고참 정도에 불과하다. 첫 당선이 2010년 1월의 불과 37표 차이로 이겼던 보궐 선거에서였으니 지금까지의 의원 경력이 10년 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원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회가 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2017년의 주지사, 부지사 선거 때 부지사직 도전을 생각해 보았지만 다른 후보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대신 당시 소수당이었던 민주당의 하원의원들 중 최고직인 원내대표 자리를 노려 성공했다. 그리고 민주당 원내대표 직에 있었기에 이번에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자 의장이 될 수 있었다.

필러콘 의원의 의장 후보 추천은 이번에 최초의 여성이며 최초의 흑인으로서 다수당 원내대표가 된 샬린 헤링 주 하원의원이 제출했다. 2009년 보궐 선거에서 겨우 16표 차이로 처음 당선되었던 헤링 의원도 작년 11월 선거 후 민주당에서 차기 하원의장이 나오게 될 것으로 결정되자 의장직에 대한 도전 의사가 있었으나 필러콘 의원에게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의장 후보 추천에 제청 발언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12선 공화당 의원이었다.
공화당 입장에서 보면 소수당으로 전락한 것이 결코 마음에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원의원들 100명의 소속 정당 분포가 2017년 선거 전에는 66대 34로 공화당의 전적 우세였다가 2017년 선거 결과 51대 49로 좁혀졌고, 겨우 2년 후인 작년 선거에서 45대 55의 민주당 우세로 뒤집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의장이 민주당에서 나올 거라면 깨끗하게 승복하고 의장 선출에 협조, 축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다. 의장 선출 투표 때는 후보자 본인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99명 모두가 만장일치로 지지해 주었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의미 있게 보였던 것은, 선출된 의장이 소개될 때 8명의 의원들이 에스코트하고 회의장으로 들어왔는데 그 중 3명이 공화당 의원이었던 것이다. 상대당에 다수당 지위를 넘겨주고 그 당 의원이 의장으로서 선출되어 회의장으로 들어오는 첫 걸음을 선거에서 패배한 소수당 의원들이 같이 호위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데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당 소속이든지 의장에게 축하도 보내고 의장직 수행을 잘 하라는 당부를 겸하는 것 같았다.

이어 새로 선출된 필러콘 의장은 취임사에 16선 공화당 의원인 콕스 전 의장의 오랜 봉사와 의장 직무 수행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포함했다. 그렇지만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시작했던 취임사 연설은 정책 부분에 대한 언급에 들어가자 양당 의원들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났다. 필러콘 의장이 여성평등권보장 헌법개정, 차별 철폐, 환경 보호, 총기 규제 등의 정책 추진을 거론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다시 기립 박수로 환영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침묵했다. 아무리 새 의장의 첫 인사라도 동의할 수 없는 정책 추진에 대해서까지 환영하는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야유나 소란 없는 성숙된 의사 진행과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이 의장 취임식 참석으로 소요되었지만 결코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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