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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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2020-01-16 (목) 문숙희 /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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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한 박스가 왔다
테이프를 뜯고 속 종이를 들어 올리자
수천의 눈동자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마룻바닥에 신문지 한 장 펴고
다듬기 시작하니 금세
쌓여가는 똥은 산이 되고
잘린 머리는 무덤이 된다

해풍에 바싹 마른 몸이 고된 여정에 지쳐
남해바다 속 푸르렀던 시절이 그립고
한생이 고단했던 노모는
선산의 볕 좋은 무덤 곁으로 가고 싶다


머리 따고 배 가르니 거기 새까만 내장
새카맣게 타들어간 오장육부만 같아
두 손 가득 퍼 담아 받아드는 남해 향기
엄마 냄새

뼈만 남아 투명해진 손으로
성긴 머리칼을 쓸어내리면
방바닥 소복이 쌓이는 은비늘
휘어지고 구부러진 등뼈는 녹슨 지 오래다
헤벌어진 입가엔 마른버짐이 꽃처럼 피어 있고
꾸덕꾸덕한 밥풀 하나 붙어있는 푹 꺼진 볼
퀭한 눈으로 나를 보며 웃는다

남해 산이다

<문숙희 / 워싱턴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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