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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2020-01-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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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에게는 불러도 대답 없는, 안타까운 이름이 두 개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맺힌 이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노벨’이다. 19세기 스웨덴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대부호가 되었던 알프레드 노벨이다. 한때는 위대한 발명가로 찬사를 받았지만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대량파괴 무기로 사용되면서 그는 사람들을 떼로 죽게 만드는 악마의 화신 같은 존재로 평가받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1896년 63세로 사망하면서 전 재산을 과학의 진보와 세계 평화를 위해 사용되게 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노벨상이다.

1901년 노벨상 시상이 시작된 후 수십년 지나도록 ‘노벨’은 한국의 관심대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이 다방면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20세기 말부터 매년 가을이면 한국민들은 가슴앓이를 했다. 그해의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 즈음이면 “올해는 혹시~”하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다가 실망으로 끝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 타는 가’ 류의 기사나 칼럼도 연례행사처럼 등장했다 사라지곤 했다.


‘노벨’ 정도의 염원은 아니지만 역시 안타까운 이름이 ‘오스카’이다. 한국영화가 이만하면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자부심이 강하면 강해질수록 오스카는 야속하기만한 이름이었다. 2000년 이후 베를린, 베니스, 칸 등 국제영화제에서 심심찮게 수상을 하고 인정을 받았지만 오스카는 좀처럼 한국영화에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던 오스카가 이번에 활짝 문을 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 등 무려 6개 부문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국제영화상(과거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이름을 올릴 것이란 ‘소박한’ 기대를 기분 좋게, 통쾌하게 허물었다.

오스카상의 공식명칭은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MPAS)상이다. 줄여서 아카데미상 혹은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오스카’는 본래 아카데미상 트로피에 붙여진 애칭이었다. 아카데미상 사서였다가 훗날 AMPAS 디렉터가 된 마가렛 헤릭이 1931년 트로피를 처음 본 순간 “우리 아저씨 오스카를 닮았다”고 말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전해진다.

마침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칼럼니스트가 이 말을 듣고 몇 년 후 뉴욕 데일리 뉴스에 관련 기사를 쓰면서 이를 인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이어 1939년 AMPAS가 트로피의 공식 애칭을 오스카로 정하면서 ‘하느님의 목자’라는 뜻의 ‘오스카’는 영화인들에게 꿈의 이름이 되었다. 봉준호 감독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지난해부터 상 복이 터졌다.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이후 일일이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국제적 상들을 차지했다. 그리고는 지난 5일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자 바로 다음 목표로 떠오른 것이 오스카였다. 실제로 오스카는 ‘기생충’에 6개의 문을 열어주었다.

과연 ‘기생충’은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오스카’라는 기록을 만들어 낼 것인가. 백인남성들의 클럽인 아카데미 회원들이 ‘자막이라는 1인치짜리 장벽’, 그 심리적 장벽을 기꺼이 넘어설 것인가.

오스카 시상식은 다음달 9일, 4주를 기다리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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