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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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써보는 일기

2020-01-12 (일) 문성길 의사 /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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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라 하면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로부터 권고 받아 학생이면 누구나 한번 시도해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 학생들은 중단하였을 것이나 일부는 그것이 계기가 되고 촉매제 역할을 하여 문필가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제 70대 후반기에 접어든 내 자신 살아오면서 부딪치고 생각하며 환희와 고민으로 점철된 일들을 그냥 묻어두고 흘려보내기엔 아쉬움이 있어 단편적이고 불충분할 것을 예상하지만 그런대로 끄적끄적 적어보는 일기 쓰기를 해보려 한다.

그 수많은 세상일들 중 아마도 자식에 관한 일들이 부모들에겐 제일 큰일들이 아닐까? 자식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부모들에겐 제일 중요하고 때론 충격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자식이 태어날 때 초조, 근심, 환희는 다들 겪었을 것이고, 자식의 조그마한 병도 특히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는 근심거리이겠고, 배변에 힘들어할 때, 손으로 변을 파내어 자식의 울음 그침을 보는 부모의 환한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무 자라듯이 하루가 다르게 쑤욱쑤욱 자라 부모의 말을 거역할 나이 때가 되면 부모와 경쟁이라도 하려는 볼썽사나운 가시내, 더벅머리로 때론 이들이 내 자식인가 할 때도 생긴다.
특히 한국에선 입시철이 되면 사생결단, 목매달듯이 합격, 불합격에 본인은 물론 온 가족이 가운을 거는 전쟁에 돌입하는 소위 입시지옥이 전개된다.
운동경기도 여러 번 시합의 합계를 내어 승자를 정하는 데 인생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입학시험을 조변석개(朝變夕改)식 단판(單判)의 연필 굴리기 등으로 하는 제도는 벌써 없어져야할 것이다. 그로인해 자신들 학생은 물론 온 가족이 희비가 교차됨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제 보니 옛날 과거시험, 현재는 사법시험이라는 것이 있어 육법전서(六法全書) 달달 외어 어린 나이에 합격되어 영감 소리 들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무슨 대단한 일들 하는 줄 알았더니 남의 시시한 잘못이나 캐며 침소봉대(針小繃大), 교언영색(巧言映色)하여 그들만의 언어로 복잡하게 만든다함은 아무리 봐줄려고 해도 봐줄 수가 없다. 그런 두뇌, 재능으로 다른 분야, 건설적, 창조적 일들을 한다면 개인적, 국가적으로 좋지 않을까?
원인이야 선천적이건, 후천적이건, 복합적이건 간에 시쳇말로 낙오자가 된 젊은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는 없을까? 교회나 성당에 가면 늘 약한 자,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 귀가 따갑게 듣지만 막상 실천은 글쎄다.

홈 리스가 된다든지, 감옥에 갇히게 된다든지 정신병원에 입원한다든지 하는 자식들을 둔 부모들의 갈기갈기 찢겨졌을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그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뜰 때 한편으론 다행, 또 다른 면에선 가슴에 대못을 박는 슬픔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구는 말하기를 자식을 앞세워 보내는 것이 슬픔 중 가장 큰 슬픔이라 하지 않던가!
옛날엔 본인도 자식들에게 화려한 꿈들이 누구나 있었을 테지만 모든 게 헛것이다. 그저 건강해서 남에게 욕 안 먹고 행복하게 하루하루 살아감이 최고라고 느낄 때가 되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지를 움직일 수 있고 잠 잘 자며 음식 잘 먹고 잘 싸면 그게 바로 행복이며 건강함이니 그저 감사할 뿐이 아니겠는가.

<문성길 의사 /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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