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군 킬러의 죽음

2020-01-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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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15일 미국의 전폭기들은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의 밥 알 아지지아에 있는 가다피 저택을 강타했다. 이날 공습으로 리비아인 40명이 죽거나 다치고 미군 조종사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리비아 사망자 가운데 가다피의 친딸이 포함돼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나 그것이 사실인지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공습은 명목상으로는 그해 4월 5일 서 베를린에서 벌어진 디스코텍 폭파에 대한 보복이었다. 리비아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 테러로 한명의 미군을 포함 3명이 죽고 229명이 다쳤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가다피는 미국에게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다. ‘적군파’ 같은 테러 집단을 후원하고 아랍의 반미세력을 규합해 그 선봉에 선 가다피를 미국은 언젠가 한번 손 봐 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미국의 이 ‘가다피 혼내주기’ 작전에 유럽 대다수 국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미국전폭기의 자국 영공 통과를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은 영국에 있는 전폭기를 발진시켜 포르투갈까지 돌아 리비아로 향해야 했다. 이 때문에 편도 1,300마일의 비행거리가 추가됐고 여러 차례 공중 급유를 받아야 했다.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총리의 귀띔으로 폭격 직전 집에서 빠져나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가다피는 “미국이 나를 죽이려 했다”며 복수를 다짐했고 대다수 관측통도 분노한 가다피가 대대적인 테러 행각을 벌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리비아가 한 일은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에 있는 미 해안경비 초소에 스커드 미사일 두 발 쏜 게 다였다. 그나마 미사일이 바다에 떨어지는 바람에 사상자도 없었다.

2년이 지난 후 스코틀랜드 로커비에서 미 팬암 항공기를 추락시켜 승객과 승무원 259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지만 3년 뒤 2명의 리비아 요원이 용의자로 체포됐다. 이중 한 명은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2009년 말기 암이라는 이유로 석방된 후 3년 뒤 사망했다. 당시에는 무모했다는 평가를 받던 리비아 공습이 이제는 가다피의 기를 꺾어 그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결국은 그의 몰락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3일 미국이 드론으로 이라크 공항을 떠나던 이란의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카심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후 중동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무모한 도발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초래됐으며 중동대전과 경제위기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보복을 다짐해온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빈농 집안 출신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자리에 오른 솔레이마니는 이란의 회교혁명을 중동 각지에 전파하는데 앞장선 인물로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의 사실상 지도자였고 화학무기로 자국민을 학살한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적극적인 비호자였다.

이 지역 미군을 죽이는데 그보다 더 적극적이었던 인물은 없다. 그가 계획하고 실행한 작전으로 이미 수백명의 미군이 희생됐으며 살해되기 직전까지 미군에 대한 공격을 구상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인물을 살려두는 것은 미군과 미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을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솔레이마니 제거가 잘못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34년 전 있었던 레이건의 가다피 관저 공습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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