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서울 여의도 지하보도 공사장 주변에서 땅꺼짐 사고가 발생해 작업 중이던 근로자 한명이 추락사했다는 안타까운 보도를 접했다. 경기도 일산 오피스텔 신축공사장 인근에서 4차선 도로 일부가 가라앉는 사고가 발생한지 단 하루 만이다.
땅꺼짐 현상이 연말의 주말에 일산과 여의도에서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평상시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이던 땅이 갑자기 내려앉는 땅꺼짐 현상은 언제 어느 곳에서 발생할지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서울시에서 발생한 땅꺼짐 현상은 총 203건에 달하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에서 총 4,500여건의 땅꺼짐이 발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땅꺼짐 현상은 태풍, 홍수와 같은 재난의 개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지반이 약해지고 땅꺼짐이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한국의 경우 낡은 상하수도관이 주된 원인으로 조사되었다. 즉 대다수 땅꺼짐 현상들은 주로 노후한 상하수도의 누수로 인해 토사가 유실되며 형성된 지하공동이 지반침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각종 지하시설물 공사를 위한 대규모 굴착과정 중에 생기는 지하수 유출도 하나의 원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지하관로 매설 등의 굴착공사 후에 지반을 견고하게 다져주지 않으면 지반침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한국의 땅꺼짐 현상은 그 발생원인을 고려할 때 싱크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흔히 말하는 ‘싱크홀(Sinkhole)’도 땅꺼짐 현상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석회암 지역의 지반이 지하수에 의해 용해되거나 침식되면서 지표면이 꺼지는 자연현상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한국에서 발생하는 땅꺼짐 현상의 대다수는 인재에 의한 것으로 싱크홀과는 발생원인이 다르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싱크홀이 아닌 인재에 의한 땅꺼짐 현상이 매년 반복된다는 점에서 사고소식은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인재(人災)’는 말 그대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이다. 자연재해가 아니므로 노력 여하에 따라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다. 노후하고 손상된 상하수도관을 단계적으로 교체하고 대규모 지하 굴착공사 시 꼼꼼한 차수벽 설치 등을 통해 지하수 유출을 철저히 관리하면 토사유출로 인한 땅꺼짐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의 전체 상하수도관 35만 6,411km 중 36.9%는 20년 이상, 16.3%는 30년 이상 노후한 관들로 조사되었다. 서울시의 경우 전체 하수관 가운데 절반이 30년 넘은 하수관으로 조사되었다. 이처럼 낡은 상하수도관이 손상되어 누수가 발생하면 언제 어디서 또다시 땅꺼짐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정부는 2018년부터 지하안전관리특별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진 성과가 미미한 단계이다.
도심지에서 발생하는 땅꺼짐 현상은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정부와 관할 지자체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땅꺼짐 현상에 대해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보다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야 한다.
미국의 공사 현장에선 ‘안전 최우선(Safety is our first priority)’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부족한 예산을 핑계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공사과정은 철저한 안전관리를 기본으로 하며 위험요소가 있을 때에는 아무리 공기가 길어지더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이 돈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로 정부에서는 지반침하 발생 건설현장에 대해 고강도 특별점검을 지시했다. 위법행위 적발 시에는 공사중지 및 벌점, 과태료 부과 등 관련법령에 따라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더 일찍 이런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아쉽다. 지금부터라도 구호뿐인 안전제일이 아닌 근본적인 장단기 안전대책을 수립하여 더 이상은 대한민국에 이런 후진국형 인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jintae.lee@ecy.wa.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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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태 지반공학박사 워싱턴주 환경부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