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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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디어 마이 프렌즈 2019

2019-12-27 (금) 박명혜(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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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을 보러 가는 것만으로 설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호랑이 담배 필 적 이야기지만, 20여 년 전 그땐, 한국 방송을 비디오로 봤는데, 김밥과 라면을 사고, 비디오 서너 개를 빌려 올 때면 기쁨에 콧노래가 절로 났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방송을 보지만, 그때 버릇 때문인지 아직도 드라마는 모아 보기를 한다. 그래서 고른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몇 년 전 방영 때 꽤 인기를 얻었던 작품인데, 그때 난 볼 수가 없었다. 드라마 전부의 내용은 아니지만 ,기억을 잃어가고, 몸이 병에 들고, 그런 친구를 부모님을 봐야 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그 내용을 당시엔 차마 볼 자신이 없었다.

드라마는 생각만큼 어둡지 않았다. 같은 고향, 학교를 졸업하고, 칠십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한 선후배들이 주인공이여서인지 곳곳에 따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각자 세월만큼 다양한 사연이 있었고, 그들은 그 나이까지 살아 낸 힘으로 혼자서, 때론 친구들과 함께 일들을 해결해 냈다. 책 장을 넘기듯 한 회 한 회를 가슴에 새기며 보았고, 등장인물의 마음이 되어 울며 또 웃으며 보았다. 내 주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있을 법한 이야기들, 내 나이가 되고 나니 비로소 알아지는 이야기들이라 꽤 오래 이 드라마를 떠나 보내지 못했다.

내게도 30여 년의 세월을 함께한 친구들이 있다. 드라마와는 상황도 캐릭터도 다르지만 돌아보니 우리도 30여 년의 세월을 치열하게 살았다. 흩어져 살아 자주 보진 못해도 각자 성실하게 살아왔고, 힘든 순간 서로의 모습을 거울삼아 힘을 냈었다. 그녀들이 올해 날 보러 미국에 왔었다. 며칠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함께하며 우린 또 서로에게 앞으로 살아갈 에너지를 보충했다. 서로의 꿈과 사랑, 젊음을 공유했던 그 시절 친구들은 살아가는데 가족과는 또 다른 힘이 된다.

드라마는 칠십여 년의 세월을 함께한 친구들이 바다 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장면과 함께 그들 중 한 자녀의 소망이 담긴 독백으로 끝이 난다. “다만 소원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좀 더 오래가길,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게 조금 더 오래가길...” 나의 바람도 많이 다르지 않다. 슬프고, 때론 가슴이 아릴지라도 2019년 나는, 나이 든 우리의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 순간이 좀 더 오래가기를 소망한다.

<박명혜(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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