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 클래식] 명곡, 명연주(2) ‘메시야’
2019-12-27 (금)
이정훈 기자
헨델은 오라토리오나 오페라와 같은 대곡을 많이 남긴 작곡가여서 FM 등의 전파를 탈 기회가 적지만 바하와 더불어 서양음악의 기초를 닦은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우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로서, 헨델의 ‘메시야’를 모르면 바보 취급을 받을 만큼 ‘메시야’ 에 나오는 ‘할렐루야’ 합창은 헨델뿐만아니라 음악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합창으로서 그 이름이 드높다. 헨델이 남긴 오페라는 40여편이 넘고 오라토리오 또한 25 곡 이상 남겼는데 독일 뿐만아니라 이태리, 영국 등지를 넘나들며 국제적인 음악가로서 명성을 쌓았으며 또한 당대 최고의 흥행사로서 마음껏 야망을 표출해 나갔던 인물이 바로 헨델이기도 했다. 그러던 헨델에게 위기가 닥치게 되는데 그것은 수많은 경쟁자가 생기게 된 것이 한 이유였고 또 영국에서 주목받던 그의 오페라가 외면받게된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태리어의 고상한 오페라를 즐기던 영국인들은 어느 날(1730년대 부터) 갑자기 자기나라말(영어)로 쓴 오페라로 돌아서게 되는데 이태리 오페라에 집중하던 헨델은 된서리를 맞게 되고 부랴부랴 방향을 선회, 영어로 된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때 ‘에스더’, ‘이집트의 이스라엘’ 등을 작곡하면서 다시 청중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지만 중풍이라는 복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뇌경색으로 신체의 반이 마비된 헨델은 의사의 권유로 독일로 건너가 온천욕으로 중풍을 다스리게 됐는데 보통 하루 3시간 온천욕을 권유받았지만 헨델은 무려 9시간 이상 온천에 몸을 담그는 초인적인 노력 끝에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 온 헨델은 부푼 희망 속에 새로운 작곡에 몰두했지만 그가 만든 오페라들은 다시 관객들의 처절한 외면으로 참패를 맛봤으며 더욱이 그의 후원자였던 캐롤라인 여왕마저 사망하자 헨델은 그야말로 돈 잃고, 건강 잃고, 명성마저 금이 가는 사면초가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 때 탄생하게 된 작품이 바로 ‘메시야’ 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 시피하며 ‘메시야’에 매달린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헨델은 원래 종교적인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가 작곡한 ‘메시야’가 종교적인 작품으로 남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이 그 이름처럼 헨델을 사지에서 구출하게 되는 구세주 역할을 담담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메시야’는 오늘날까지 다소 설교처럼 부풀려져 그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게 되었는데 헨델이 원인모를 영감에 사로잡혀 ‘메시야’를 작곡하게 되었다는 둥, 초인적인 힘에 의존하여 24일만에 기적적으로 완성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연주회 준비 등으로 바빴던 헨델에게 있어서 통상 오라토리오 작곡은 한편당 3주 가량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중풍 속에서 작곡한 것도 아니었고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에 힘입어 작곡한 작품도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위대한 악상을 지닌 대곡을 단 24일만에 완성했다는 것은 제 아무리 속필 작곡가 헨델이었다고 해도 그의 천재성에 더하여 어떤 알 수 없는 손길이 함께 했다고해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지난 주에는 헨델의 ‘메시야’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동안 취재차 몇몇 합창단의 연주를 감상할 기회는 있었지만 일부러 전곡을 들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메시야’는 약 2시간 20여분가량 걸리는 대곡이기 때문에 전문 연주단체가 아니고서는 한 시간 반 정도로 줄여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전곡이라해도 크게 지루하지 않은 것이 ‘메시야’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것이다. 특히 가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어도 음악만으로도 충분한 연주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만큼, 크리스마스 시즌에 꼭 한번 감상을 권하고 싶은 작품이 바로 ‘메시야’이기도 하다. 유튜브 등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 실황이 나와 있는데 이 작품은 소규모 합창단 공연과는 달리 약 3백여명의 합창단이 나와 웅장한 ‘메시야’ 를 선 보였는데 합창단이 많다고 해서 꼭 좋은 공연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시드니 공연은 대체로 압권이었으며 특히 음향이 훌륭하여 바로크 음악의 섬세한 선율미를 동시에 느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메시야’가 크리스마스 공연으로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자선 공연이라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본고장 영국에서는 지금도 ‘메시야’ 연주회의 수입금은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작곡가 헨델 또한 이 곡을 30 차례 이상 지휘한 바 있는데 연주회 수입금은 그때마다 전액 양로원 등에 기부할만큼 ‘메시야’는 그에게 특별한 작품이었으며 죽을 당시에도 유언으로 ‘메시야’만큼은 자선 공연으로 영원히 남겨질 수 있도록 당부했다고 한다. 1742년 더블린 공연 당시에는 국왕 조지 2세가 참석, ‘할렐루야’ 합창에서 일어섰다고 하며 그 때문에 지금도 ‘할렐루야’ 합창은 누구나 일어서서 감상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이정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