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카네기는 미국을 대표하는 부자의 하나다. 전보 타자수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철도와 석유, 그리고 제철회사에 투자하며 억만의 부를 쌓았다. 그가 세운 피츠버그 카네기 스틸은 1901년 JP 모건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인 3억 달러에 팔렸으며 이로써 그는 잠시 존 록펠러를 제치고 미국 제일의 부자가 됐다.
그는 많은 돈을 벌었을 뿐 아니라 번 돈을 아낌없이 자선사업에 쓴 ‘기부왕’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이 쓴 ‘부의 복음’에서 부자가 돈을 싸 짊어지고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르쳤고 살아생전 지금 돈으로 650억 달러에 달하는 3억5,000만 달러를 교육과 문화 예술 단체에 기부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부를 이룬 그가 미국 태생이 아니란 점이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12살 때 빈털터리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왔다. 그야말로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표본 같은 인물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일은 옛날에나 있었지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로자 포르토는 스페인 갈리시아에서 이주한 이민자를 어머니로 쿠바에서 태어났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공산혁명에 성공해 집권하면서 로자는 시가공장 매니저 자리에서 해고됐고 남편은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하루아침에 생계가 막막해진 로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로 부터 배운 기술로 빵을 만들어 파는 것밖에는 없었다. 카스트로 정부는 개인이 비즈니스를 하는 것을 금했지만 로자가 만든 스폰지 케익은 이웃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덕에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70년대 미국으로 이민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LA에 발을 디딘 로자 부부가 가진 것이라고는 입은 옷밖에 없었다. 남편은 청소일로 생활비를 벌었고 로자는 쿠바에서 하던 대로 집에서 빵을 구워 이웃 쿠바계 이민자들에게 팔았다.
그러나 미국과 쿠바는 달랐다. 쿠바에서는 정부 눈치 보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미국에서는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날수록, 더 많은 손님이 오면 올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로자는 1976년 에코팍에 ‘포르토스’라는 300평방 피트짜리 작은 가게를 내는데 성공했고 가게가 날로 번창하자 1982년 지금 글렌데일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 미트 파이와 감자 볼, 과바와 치즈 스트루델 등 전통 쿠바제품은 쿠바인뿐만 아니라 일반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고 이제는 언제 가도 오래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맛집이 됐다. 쿠바출신 배우인 앤디 가르시아도 이 집 단골이다.
계속 손님이 늘자 ‘포르토스’는 버뱅크, 다우니, 부에나 팍, 웨스트 코비나에 지점을 냈으며 베아트리스, 마가리타, 라울 등 세 자녀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포르토스’는 2016년 옐프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먹을 만한 맛집’ 리스트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그 ‘포르토스’의 창업자 로자 포르토가 지난 주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로자는 벌써 20년 전부터 빵집에서 손을 떼고 일곱 명의 손자손녀를 돌보는 일에 전념했다고 한다.
로자 포르토의 삶은 미국이 아직은 남다른 기술과 열정만 있으면 맨손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는 곳임을 보여준다. 맛있는 빵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 로자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