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해도 너무한 ‘진료비 폭탄’

2019-12-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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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샌프란시스코에 놀러왔던 8개월짜리 한국 아기가 호텔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쳤다. 카펫 바닥이었고 외상도 없었지만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불안해진 부모는 911에 전화했고 출동한 앰뷸런스를 타고 저커버그 샌프란시스코 제너럴하스피탈 응급실에 들어갔다.

의사들은 코와 이마에 약간의 멍이 들었으나 괜찮다고 했고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낮잠을 잔 후 유동식을 먹고 약 3시간 만에 퇴원했다. 아기와 부모는 계속 휴가를 즐겼고 그 일은 곧 잊어버렸다. 그런데 2년 후인 지난해 청구서가 날아왔다. 1만8,836달러…깜짝 청구서(surprise bill)로 불리는 이른바 ‘진료비 폭탄’이었다.

미국 병원 응급실의 과다 진료비 실태를 파헤친 온라인 해설매체 복스의 특집보도에 실린 이야기다. 전국 50개주 독자들이 보내온 1,000여건의 진료비 청구서를 검토 분석한 결과 드러난 진료비 폭탄의 실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뉴저지의 한 여성은 넘어지면서 귀가 찢어져 응급실을 찾았다. 얼음찜질과 반창고가 치료의 전부였다. 아무 진단도 받지 못했던 그녀는 후에 다른 것을 받았다. 5,751달러 진료비 청구서. 유사한 케이스에 유사한 청구서들의 내역에 나타난 가장 큰 금액은 시설요금(facility fee)으로 응급실 문을 들어서서 치료를 요청하는 순간 부과되는 비용이라고 복스는 분석했다.

결혼식 때 붙인 인조눈썹으로 충혈 된 눈에 안약 몇 방울 넣어준 새 신부에겐 238달러 청구서가 보내졌고, 퇴근길 길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다가 손을 물린 플로리다의 야생 생물학자는 집근처 병원 응급실에 들러 공수병(광견병) 백신을 맞고 몇 주 후 4만8,512달러 진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턱뼈를 다쳐 응급실로 실려 간 텍사스의 한 남성은 자신의 의료보험이 커버하는 병원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턱뼈를 교정해준 의사는 아니었다. 진료비가 8,000달러에 달하는데 보험회사는 지불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만이 아니다. 응급상황에 처했던 미국인들 상당수가 진료비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 앰뷸런스를 탔을 경우 51%가, 응급실 방문환자의 21%가 깜짝 청구서를 받은 것으로 USA-페리 조사에서 나타났다. 환자의 보험플랜 네트워크에 들어있지 않은 의사(혹은 병원)에게 진료를 받을 경우 의사나 병원이 보험에서 지불 거부한 액수를 환자에게 청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전거사고를 당한 24세 샌프란시스코 여성은 블루크로스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그가 실려간 저커버그 병원은 이 보험을 받지 않았다. 2만여 달러의 청구서를 받은 그의 스토리가 복스에 실린 후 병원 측은 금년 4월 청구서를 보험의 공동부담액인 200달러로 낮춰주었다.

이처럼 언론의 덕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미국인의 거의 절반은 폭탄급의 수만 달러 진료비는커녕 깜짝 청구서가 500달러만 되어도 빚을 내야 갚을 수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상치 못했던 진료비 청구는 최우선 헬스케어 관심사의 하나다.

요즘의 양극화 연방의회로서는 드물게도 환자들을 진료비 폭탄에서 보호하려는 초당적 법안들이 상하원에서 긍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백악관도 지지하니 통과만 되면 입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상원과 합의에도 성공한 하원 에너지·상업위 법안이 이번 주말 정부예산안에 포함되어 통과가 기대되었는데 다시 제동이 걸렸다. ‘진료비 폭탄’의 악몽은 아직 더 계속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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