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철창에 갇힌 아기 예수

2019-12-13 (금) 01:02:47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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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망으로 된 작은 우리 3개. 왼쪽 칸의 남성과 오른쪽 칸의 여성은 애타게 가운데 칸을 바라본다. 바라다볼 뿐 다가갈 수는 없다. 장대 꼭대기에서 커다란 별이 빛나는 가운데 칸에는 마일라 강보에 싸인 아기가 잠들어 있다. 12월의 첫째 주말 남가주, 클레어몬트 연합감리교회 앞에 세워진 성탄 설치물이다.

성탄의 계절에 성모 마리아와 요셉, 아기예수의 ‘거룩한 가족’을 철창에 갇힌 난민들로 표현한 설치물로 논쟁이 뜨겁다. 캐런 리스타인 담임목사는 ‘난민 예수가족’ 사진과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수만 개의 찬반 댓글들이 쏟아졌다. ‘약자들을 위한 용기있는 행동’ ‘예수의 가르침의 예술적 표현’이라는 지지, ‘예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이다.

리스타인 목사는 난민가족들이 피난처를 찾아 미국 국경으로 몰려드는 이 시대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난민가족을 생각해본다”고 썼다.


예수 탄생 직후 사내아기들을 죽이려는 헤롯 왕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이 가족이 “만약 오늘날 우리나라로 피난하려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고 목사는 묻는다. 난민인 요셉과 마리아는 국경에서 격리되고, 아기 예수는 홀로 떼어져 국경수비대 보호시설에 갇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고 그는 말한다.

‘거룩한 가족’이 철창에 갇힌 모습을 눈으로 봄으로써 무수한 난민가족들의 아픔을 느껴보자는 제안이다. 느낌으로써 예수가 가르친 친절과 자비, 모든 이들을 품어 안는 포용을 실천해보자는 제안이다.

직접적 언급은 없지만 설치는 트럼프의 비인도적 이민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불법이민 근절을 위해 현 정부가 펼치는 여러 강경한 정책들 중 특히 논란이 심한 조치는 어린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시키는 정책이다. 이 불운한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낯선 땅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본국으로 쫓겨나고 아이들은 부모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른 채 어딘가에 수용되어 있다. 미국 민권자유연맹에 따르면 부모와 떨어져 정부 수용시설에 갇혀있는 이주민 어린이들은 현재 5,400명이 넘는다.

2019년 지구상에는 유난히 시위가 많았다. 3월말부터 시작된 홍콩시위는 봄여름가을 지나 겨울이 되도록 멈추지 않고 있고, 그 외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지역들이 거센 반정부 시위로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거리가 불타는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다.

남미에서는 지난 10월 지하철요금 4센트 인상안이 국민적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폭동으로 번진 칠레를 비롯해, 콜롬비아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국가들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란, 이라크, 레바논이 대규모 시위로 뒤숭숭한 연말을 맞고 있다.

이란에서는 개솔린 가격이 민심을 자극했다. 지난달 15일 정부가 연료보조금 삭감을 결정하면서 개솔린 가격이 50% 뛰어오르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정부당국이 무력진압, 100여명이 사망했다. 이라크에서는 정부의 부패와 높은 실업률이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면서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 수단, 이집트 등지가 시위로 흉흉하다.

나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흐름은 같다. 날로 심화하는 소득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으로 오랜 세월 쌓여왔던 분노가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것이다. 콜롬비아를 예로 들면 소득상위 10%가 국가 전체 소득의 40%를 차지한다. 나머지 90%는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부자는 날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날로 가난해지는 양극화, 거기에 정부의 부패로 인해 불평등이 오히려 악화하는 현실이 지하철요금 몇 센트, 개솔린 가격 몇 푼 때문에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는 엄청난 반응을 초래한다.

이어 생활고는 범죄를 부추기고, 치안은 마비되면서 절망의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은 고향을 등진다. 자국 내 이주, 타국으로의 이주가 세계적 추세이다. 그리고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멕시코 등 중미국가 국민들이 빈곤과 범죄를 피해 죽기 살기로 몰려오는 곳이 미국의 남쪽 국경이다.

현실적으로 그들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가족들을 떼어내는 비정함까지 동원해야 하는 건가. 이민의 나라, 미국의 인류애는 어디로 간 건가. 클레어몬트 교회의 설치물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상에는 눈감고 싶은 불편한 현실들이 많이 있다. 난민 문제일수도 있고, 이웃의 노숙자 문제일수도 있으며, 곤경에 처한 친지의 문제일수도 있다. ‘철창에 갇힌 아기 예수’는 우리에게 눈을 뜨고 보라고 말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다”고 예수는 말한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탄의 계절에 필요한 묵상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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