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클래식] 명곡, 명연주(1) '알프스 교향곡'
2019-12-13 (금)
이정훈 기자
해마다 연말이 되면 FM 방송 등에서 ‘클래식 베스트 100’ 등 순위를 발표하곤 한다. 인기곡이 꼭 명곡인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좋은 곡인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고전음악이라는 것은 어쩌면 남이 듣는다고해서 함께 따라 들을 수 있는 곡이라기보다는 거실 한 귀퉁이 먼지낀 곳에 잠들어 있는 LP 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평생가도, 아니 운이 좋다면 어쩌다 한 두번 주인 손을 거쳐 턴테이블에 올려지는 행운을 누리게 되는 신세, 그런 것이 고전음악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LP판의 입장에선 조금 야속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남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며 애써 화장을 하는 작부의 모습은 고전음악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다. 차라리 깊이 숨겨져 있고, 남이 그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고해도 그 스스로 신에 의해 광채나며 언젠가는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보석같은 존재가 바로 치유의 예술, 고전음악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이다.
FM 등에서 발표되는 100곡 순위를 재미 삼아 찾아 보니 베토벤의 교향곡 9번(합창)이 수년간 1위를 차지 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1위였고 베토벤의 9번이 3위로서 이곳과는 순위가 바뀌어 있었다. 이밖에 100곡 안에는 베토벤의 곡이 10곡, 바흐 6곡, 모차르트 5곡 순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면 100곡에서 제외된 곡들은 명곡이 아닌 걸까? 아니 그 반대로 클래식이란 오히려 100곡에서 제외된 곡들에서 부터 그 진정한 시작이 있다고 할만큼 너무 방대한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특히 베스트 100곡을 제외하고도 유튜브 등에 수 많은 명곡들이 등록되어 있어 감상이 용이한데, 유튜브를 통한 음악 감상은 광고 등의 이유로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숨겨져 있는 명곡들을 좋아하는 연주자, 악단 등을 골라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작품 중의 하나가 아마 바바리안 라디오 오케스트라(Bavarian Radio Symphony)가 연주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Alpine Symphony)’이 아닌가 한다. R.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이 늘 인기 순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마 그가 나치에 협조한 작곡가였다는 점을 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상적으로 안티 크리스챤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교회를 중심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 안티가 많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 작품성에 비해R. 슈트라우스만큼 신청곡이 많지 않은 작곡가도 드물 것이다.
R. 슈트라우스(1864-1949)는 후기 낭만파에 속하는데, 1949년에 사망했으므로 현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음악 형식은 19세기에 머물러 있었던 작곡가였다. 뛰어난 역량의 작곡가였지만 불협화음을 거의 쓰지 않았고 낭만주의 형식으로 수많은 교향시와 오페라 등을 남겨 말러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이며 지휘자로서의 이름을 남겼다. 특히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 ‘살로메’와 ‘알프스 교향곡’ 등은 오케스트라의 폭력, 아름다운 한폭의 음화로서 영원히 남을 명작이라고 극찬받았던 작품들이었다. 그 중 ‘알프스 교향곡’은 R. 슈트라우스를 알기 위해서는 꼭 들어야 할만큼 R. 슈트라우스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알프스를 등반했을 때의 감상을 그린 작품이다. R. 슈트라우스는 약관 14세 때 알프스에 올랐는데 당시의 감동을 평생 잊지 못해 그의 나이 47세(1911년)에 이 작품을 구상, 4년에 걸려 완성했다. 이 작품은 R. 슈트라우스의 작품 중에서 자연미와 서정미, 치유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는 감동의 명작이었다. 20세기의 ‘전원 교향곡’으로도 불리우고 있는데 ‘전원’과 다른 점은 자연에서 느낀 신에 대한 감사라기보다는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에 대한 경외, 도전, 승화 등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Sun Set 부분은 하산하는 모습으로서의, 모든 것을 내려 놓는 듯한 해탈의 감동으로서 오히려 종교적이기조차하다.
R. 슈트라우스는 1900(34세)년에 이 작품을 쓰겠다고 구상했지만 정작 손을 댄 것은 1911년이 되어서였다. 머리 속에서 스케치를 그려갔던 슈트라우스는 1914년 스케치가 완성되자 1백일 만에 오케스트레이션을 마치고 1915년 베를린에서 초연을 보았다. 원래 4 악장으로된 교향곡으로 구상했으나 밤, 일출, 등산, 숲으로 들어감, 산책, 폭포에서, … 폭풍 전의 고요, 천둥과 폭풍, 하산, 일몰, 종결, 밤 등 22개의 소제목이 붙어있는 교향시로 완성을 보았다. 실존주의자로서 슈트라우스는 영적 성화의 대상으로서 자연을 찾았으며 그곳에서 한 자연인으로서 자연을 마주한 그의 철학적 안식을 맛보았다. 그 때문에 슈트라우스는 1908년부터 뮌헨의 서남쪽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헨에 산장을 지어 그곳에서 알프스의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작곡을 구상할 만큼 알프스를 사랑했다. 슈트라우스는 완벽한 알프스의 표현을 위해 4관 편성 외에 20개의 호른, 6개의 트럼펫, 6개의 트롬본, 오르간, 바람소리 내는 기계 등을 대폭 강화했는데 유튜브에 나와있는 버나드 하이팅크, 세이지 오자와 등의 지휘 중에서도 마리스 옌손이 지휘하는 바바리안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가장 압권이다.(연주시간 약 55분)
<이정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