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콜클래식] 강아지 왈츠
2019-11-08 (금)
이정훈 기자
나는 개를 좋아하지만 아내는 그렇치 못하다. 아니 개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동물에 대해 무조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아내의 태생적, 아니 생물학적 결격 사유의 하나이다. 아마도 우리집의 불행은 이점에서 그 시작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작은 멍멍이 한마리 들이는데 우리집만큼 큰 전쟁을 치른 집도 찾아보기 힘들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에는 늘 기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집에는 지금 견공 하나가 버젓히 생존해 있을 뿐 아니라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다. 물론 아내와 견공은 지금도 서로 물어뜯는 대치적 존재이긴 하지만 이제는 미운정 고운정이 쌓여 서로 많이 친해졌다. 아니 친해졌을 뿐 아니라 가끔 일어나는 격돌은 서로간 초기에 있었던 전쟁의 역사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지 이제는 개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다는 듯 아내는 스스로 사료를 챙기는 등 알뜰히 보살피기까지 한다. 개를 기른다는 것은 귀찮고 신경 가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가족간에 불화가 있을 때, 소통 장애를 겪을 때 늘 묵묵히 우리 곁을 지키며 가족간의 공통분모로서 무한한 힐링의 위로를 주기도 한다.
예전에 한국에선 기르던 개를 잡아먹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애완견 천만 시대’라고 한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과거에는 식량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정신의 빈곤의 시대가 도래했기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우리 집에도 강아지 한 마리가 존재한다. 존재할 뿐 아니라 우리 집에서의 견공의 서열은 꽤 높은 편이다. 미국의 견공들은 마치 자신들이 사람인 줄 안다. 침대에 올라와 대자로 누워 코를 고는가 하면 먹는 것 하며 입는 것 하며 사람이 하는 짓은 모두 다 흉내내며 살아 간다. 생일되면 생일 케이크를 사다주고 털짜르고 병원가고 사료비 대랴 여관비 대랴… 특히 개의 스케줄 관리까지 계산하면 사람이 개를 기르고 있는 것인지 개가 사람을 기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견공들의 입장에서도 할말은 많을 것이다. 사람들이 외로움때문에 동물들을 노리개삼아 집 안에 들이는 일은 이해할 수 있다 치자. 툭하면 더운 날에 차에 홀로 놔 두고 볼일 보러나가는 바람에 질식해 죽는 일이 태반사다. 무더위 속에 개를 차 안에 놓아 둔다는 것은 살생 행위나 다름없는데도 사람들은 동물의 생명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하다. 어릴 때 부터 낯선 곳에 끌려와 여지껏 주인을 섬기고 비위 맞추느라 X고생했는데도 주인은 여전히 혼자 떨어져 있는 개들의 공포에는 나몰라라 한다. 툭하면 빈집에 홀로 가둬놓고 볼일보러 나가곤한다. 너무 외로워서 조금 짖어댔더니 레몬쥬슨가 뭔가 자동 발사기를 코앞에 놔두고 나가는 바람에 레몬이 연발로 발사돼 숨막혀 죽는 줄 알았다. 5개월 쯤 됐나, 고생고생 어느 정도 낯선 곳에 적응되는가 싶었더니 하루는 하얀 제복을 입은 사람들 앞으로 데려가 나를 거세시켰다. 나는 모든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꼬깔콘인가 뭔가를 머리에 쓰고 한달 이상을 고생해야만 했다. 그리고 끝으로, 개도 정서적인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참조해 줬으면 좋겠다. 참 X같은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개는 소리에 민감하여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같은 소음에 쇼크를 일으키는 개들도 많다. 개도 인간처럼 조용한 음악, 친환경적인 음악을 사랑한다. 앞으로는 제발 불꽃놀이 같은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개도 음악을 좋아한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개는 소리에 매우 민감하여 인간처럼 부드러운 음악을 선호하며 특히 불규칙한 소음, 폭음 등에 정신발작을 일으키는 개들도 많다고 한다. 유튜브 등에 개를 안정시키는 음악들이 많이 나와 있어 들어보니 매우 서정적이고 인간의 정서에도 어울리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때문일까(?) 역사적으로 개를 사랑했던 음악가들이 많이 등장하하곤 하는데 엘가나 쇼팽, 베토벤, 바그너 등도 개를 좋아했던 음악가들이라고 한다. 쇼팽의 ‘강아지 왈츠’, 엘가의 ‘수수께기 변주곡’ 등에서 개를 주제로 한 음악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엘가는 아내 때문에 개를 키우지 못했지만 친구의 개와 함께 늘 산책을 하곤 했다고 한다. 엘가는 친구와 개가 뛰노는 모습을 그의 작품 ‘수수께끼 변주곡’ 중 11번째 곡에 담기도 했는데 아내가 사망하자 개 2마리를 기르며 외로움을 달랬다고 한다. 1920년 70회 생일을 맞이하여 BBC 가 생방송 연주회를 열어 주었는데 엘가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뒤 마이크 앞에서 기르던 개 (미나)에게 굿 나잇 인사를 했는데 그날 밤 미나는 라디오를 통해 주인의 음성을 듣고 흥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베토벤 역시 개를 좋아하여 ‘엘리제를 위하여’를 헌정했던 테레사의 애완견 기곤즈와의 우정은 유명하며, 쇼팽이 남긴 강아지 왈츠(6번, 내림라장조)는 연인 조르드 상드의 애완견 마르키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의 꼬리를 물려고 뱅뱅도는 모습을 담은 깜찍한 선율이 널리 사랑받고 있다. <힐링이 필요한 자들은 개를 기릅시다. 왈왈 >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