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직장문화의 변화

2019-11-04 (월) 12:00:00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크게 작게
오랜 기간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일하고 있다. 한국서 일한 지 1년여가 되니 10년 전과 비교해 한국의 직장문화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가 눈에 띈다.

영국으로 가기 전 한국에서 일할 때만 해도 한국직장에서는 퇴근시간이 명확하지 않았다. 우선 일이 있으면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해야 했다. 삶의 우선순위 1위는 직장과 일로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또 한국에서는 자신의 일이 아무리 끝나도 팀원이나 동료들이 아직 일을 끝내지 못했으면 같이 있어주는 진한 ‘전우애’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 끝내지 못한 동료의 일을 도와줄 때도 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사무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같이 해결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고 또 일을 끝내면 다 같이 하루를 마무리할 겸 술 곁들인 회식도 하곤 했다.


일이 바쁜 시기에는 동료들의 눈치를 보느라 휴가를 포기 해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라는 조직문화와 ‘동지애(comradeship)’가 바탕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런던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 자기 업무를 끝내면 바로 퇴근해버리고, 일보다는 가족과 개인사를 1순위로 여기는 동료들에게 정도 안 가고 우선 믿음이 안 갔다. 협력을 중시하면서도 개인의 업적이나 역량을 더 드러내 보이려 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낯설기만 했다. 일이 많이 바쁜 시기여도 팀원들이 몇 개월 전 세운 계획이라며 휴가를 취소하지 않아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팀의 회식은 주로 점심식사로 근무시간 중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비즈니스 미팅 또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모든 게 개인적 시간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였다. 이런 직장문화에 익숙해져 나 또한 출장 출발일이나 도착일이 공교롭게 주말에 끼어 있으면 휴가를 신청하는 대범함까지 생겼다.

하지만 요즘 한국의 직장문화는 참 많이 변했다. 더 이상 동료들과 함께 야근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퇴근시간에 맞추어 자기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바로 떠나버린다. 휴가도 별로 눈치 보지 않고 긴 일정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떨 땐 반 강제적 ‘친목도모’였던 회식문화도 많이 사라져 요즘에는 사무실가의 식당들이 되레 한산하다.

이러한 변화는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새로 생긴 정책이 원인의 하나일 수 있고, 시간의 효율성과 가성비에 민감한 밀레니얼들의 삶에 대한 우선순위 재배열에서 오는 것일 수 있겠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란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요즘 한국사회는 일과 삶의 밸런스를 중시한다. 취미생활을 하거나 운동 같은 건강관리를 하며 워라밸을 지켜내는 직장인들이 많아졌다.

물론 일이 삶의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예전보다 개인의 삶과 행복이 추구되는 요즘의 직장문화가 더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퇴근시간 즈음 어딜 가나 직장인들로 북적이던 사무실가의 식당들, 또 ‘우리’라는 개념, 함께 힘들고 함께 이뤄나가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고유한 직장 조직문화가 사라지는 모습이 한편으로 아쉽기도 하다.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