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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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침략에도 꿋꿋…밤이면 더 찬란한 고창읍성

2019-10-18 (금) 글·사진(고창)=우현석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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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고창...호남내륙 방어하는 군사요충지 역할, 보리농사 성해 모양성으로 불리기도

▶ 읍성안 군락 이룬 맹종죽 대숲 장관...600여년의 세월 갈무리한 선운사, 봄엔 동백꽃, 가을오면 꽃무릇 천지
‘호남의 내금강’ 도솔산 산행도 좋아

수많은 침략에도 꿋꿋…밤이면 더 찬란한 고창읍성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리는 고창읍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축성했다. 사진은 고창읍성의 야경.

수많은 침략에도 꿋꿋…밤이면 더 찬란한 고창읍성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성종 때 창건돼 그 역사가 600년에 이른다.


수많은 침략에도 꿋꿋…밤이면 더 찬란한 고창읍성

고창읍성 안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맹종죽 대숲.



서쪽에서 몰려온 땅거미가 읍성을 덮었다. 가을 하늘을 빛내던 햇살은 기운을 소진해 서쪽으로 기울어 노을로 불탔다. 성으로 들어가 성곽을 딛고 서 한동안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맹종죽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대숲으로 들어갔다. 짙푸른 맹종죽의 기운을 받은 대숲은 푸르다 못해 검은 기운으로 나그네를 압도했다. 대숲의 초입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발걸음을 돌려 남쪽으로 향했다. 대숲을 지키는 모기떼의 기세에 눌린 까닭이다.

고창읍성은 세종 32년에 축성을 시작, 문종을 거쳐 단종(1453년) 원년에 완공했다.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리는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축성됐다. 평온한 고장에 이렇게 견고한 성을 쌓을 정도였으니 서해로 올라와 약탈을 자행하던 왜구의 분탕질을 짐작할 만했다.

그런데 수백 년이 흐른 오늘에까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니 그들의 파렴치는 대를 잇는 유전형질임이 틀림없다.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던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에 면적은 16만5,858㎡(5만172평)로 동·서·북문과 세 곳의 옹성, 여섯 곳의 치성(雉城)을 비롯해 성 밖의 해자(垓字)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조성돼 있다. 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불타 없어진 것을 1976년부터 정비해 14개 동을 복원했다. 고창읍성은 이에 앞서 1965년 4월1일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바 있다.

고창읍성을 설명하는 오향심 해설사는 고창읍성이 모양성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해 “고창군이 옛날에 ‘모량부리현’이라 불렸는데 그 지명이 줄어서 모양현이 됐다”며 “보리 모, 볕 양자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창은 햇볕이 좋아 보리농사가 성했고 지금도 청보리밭이 유명해 축제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왜구가 밀려 들어오던 남쪽에는 문이 없고 북쪽을 바라보는 ‘공북루’와 동쪽을 지키는 ‘등양루’, 서쪽을 바라보는 ‘진서루’ 등 세 개의 문만 있다는 점이다. 남문이 없는 것은 지대가 108m로 높아서 문을 따로 둘 필요가 없는 천연 요새였기 때문이다.

고창읍성 안에는 원래 민가가 없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동헌 자리에 초등학교를 지었고 고창여중·고가 들어서 약간의 사람들이 살기도 했다.

해 저문 읍성을 빠져나와 숙소에서 1박 후 아침 일찍 선운사로 향했다.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산(兜率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성종 때 창건돼 그 역사가 600년에 이른다. 선운사가 유명해진 것은 절 뒤의 동백 군락 때문인데 지금은 동백철이 아니라 짙푸른 잎새들만 조밀하게 절을 감싸고 있다.

절 뒤에 동백을 심은 것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동백은 사철 잎이 푸는 활엽수로 수분을 머금고 있어 불이 안 붙는 방화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동백이 내년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선운사를 장식하는 것은 꽃무릇이다. 꽃무릇은 해마다 9월 말을 전후로 피는데 온도가 낮은 절 뒤편 높은 곳의 군락이 먼저 피어난다. “꽃의 특성상 자생하는 위치가 7·8부 능선이라 높은 곳에서 먼저 만개하고 점차 아래로 내려온다”고 선운사를 안내하는 이영미 문화관광해설사는 말했다.

기자는 이날 선운사에서 본 꽃을 상사화로 알고 있었는데 이영미 해설사는 “선운사에 핀 꽃은 상사화가 아니라 꽃무릇”이라며 “상사화와 꽃무릇은 같은 뿌리식물이지만 상사화는 꽃 안에 수술과 잎이 같이 있는 반면 꽃무릇은 꽃잎이 나오면서 꽃이 안으로 말리고 수술이 밖으로 나오는 게 다르다”고 말했다. 또 꽃무릇은 빨간색 한 종류뿐이지만 상사화는 분홍색·주황색·흰색·진노랑 꽃 등 네 종류나 된다.

지금쯤 꽃무릇이 다 졌을 선운사는 도솔산 아래 위치한 절로 조선 후기 무렵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채를 거느린 큰 절이었다. 선운사는 지금도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 참배객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선운사에 왔다면 도솔산에 올라보는 것도 좋다. 정상인 경수봉이 해발 444m로 가장 높은 봉우리인데 고도가 높지 않아 오르기 편하고 경관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도솔암까지는 왕복 두 시간이면 충분한데 어머니 품속같이 편안하며 ‘호남의 내금강’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다.

<글·사진(고창)=우현석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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