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투어 프로와 캐디

2019-10-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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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희 프로의 ‘골프 in Tour’

투어 프로와 캐디
투어 선수와 캐디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캐디가 없이는 시합에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캐디는 선수가 골프코스 안에서 모든 것을 상의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다. 나의 결과에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고독한 스포츠인 골프는 한 샷 한 샷 함께 고민해주는 캐디가 있다는 것이 아주 큰 힘이 된다.

간혹 부모님 혹은 오빠나 동생, 배우자가 캐디를 해주는 선수들도 있지만, 보통 투어 캐디는 캐디가 직업인 사람들이 많다. 보통은 주급을 주고 캐디를 고용하고, 본선에 들어가서 상금을 얻게 되면 상금의 퍼센티지를 받는다. 주급은 시합을 하는 주에만 지불하고 시합이 없는 경우는 쉬는 캐디들도 있고 또 일반인도 캐디를 고용해서 플레이할 수 있는 명문 골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한 회사를 운영할 때 내가 고용할 수 있는 인원이 한 명이라면 한 명이 열 명 몫을 하는 인재를 데리고 오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선수들은 캐디를 고를 때 심사숙고한다. 또 캐디들은 직업이기 때문에 더 좋은 성적을 낼 것 같은 선수에게 가고 싶어 한다. 한 선수는 캐디가 너무나 잘 맞았고 우승도 함께 했는데 다른 선수에게 가겠다고 해서 배신감에 한동안 힘들어 하는 경우가 있었고(심지어 상대방 선수가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던 선수도 아니었다), 선수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다른 선수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실력이 좋았던 캐디가 시즌이 끝나고 직접 연락이 왔고 마침 캐디를 구하고 있었던 때라 새로운 시즌을 함께 하기로 시작을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고, 같이 차를 렌트해서 쓰고 식사도 함께 하고 연습도 함께 했다. 시즌이 시작되고 3개월쯤 지났을 때 엄지손가락에 부상이 왔다. 백스윙 탑에서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 때문에 시합 하나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자 바로 그만두겠다고 통보해 왔다.


항상 그런 식이다. 더 힘든 시기를 지나야 할 때 제일 많이 떠난다. 가족도 매니저도 없이 혼자 시합을 다녔기에 캐디에게 더 의지를 했던 터라 더 충격이 컸다. 나는 4주간 치료 후 다른 캐디와 우승을 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캐디와 함께 이동을 하지도 않았고 코스에서 필요할 때만 만났다. 나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어떤 선수들은 이렇게 캐디에게 많이 의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선수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간섭하는 캐디를 불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남편이 캐디를 하는 한 선수는 시합 중간에 사소한 것까지도 다 묻는다. 그린 위에서 본인 앞에 있는 공이 떨어진 자국을 수리할까 하지 말까 물어보는데 필자는 그걸 보고 ‘물어보는 시간에 벌써 수리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캐디에게서 잊지 못할 도움을 받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US오픈 마지막 날 마지막 홀이었다. 핀은 그린의 왼쪽 끝에서 3야드 공간이 있었고 3야드 왼쪽은 페어웨이에서부터 그린 뒤까지 이어지는 해저드가 있었다. 거리상으로 바람과 모든 것을 계산했을 때 완벽한 7아이언 풀스윙 거리였다. 핀을 보는 순간 가깝게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7아이언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그때 나의 캐디가 7아이언만은 줄 수 없다고 했다. 보통 나는 나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샷을 했고 캐디도 그걸 맞춰줘 왔다. 7아이언을 등 뒤로 숨기더니 이건 안 된다 말만 반복했다.

45초의 시간이 있는데 페어웨이에서 1분 이상 우리는 실랑이를 하다 결국 6아이언을 잡고 그린 중앙으로 공략할 수밖에 없었다. 2퍼트로 마무리해서 파를 하고 성적을 확인해보니 13등 정도였다. 끝나고 왜 그랬느냐 물었더니 7아이언을 들었으면 내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가지 않고 핀에 가깝게 공략을 할 것 같았고 풀스윙을 하면 더욱더 드로우(draw)가 나올 확률도 높아지고 홀 위치 자체가 왼쪽 해저드로 유도하기 위한 핀 위치라고 말했다.

그후 뒤에 오는 선수들이 마지막 홀을 플레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한 그룹에 한 명에서 두 명은 여지없이 해저드로 들어갔다. 모든 선수가 끝난 후 나는 4등으로 올라갔다. 이렇듯 선수가 성적이나 결과에 연연하여 시야가 좁아질 때 한 발짝 뒤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가족들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캐디는, 코스 안에서 선수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유일한 동반자이다.

이일희 프로는…

LPGA 투어프로(바하마 클래식 우승)
아로마 골프 아카데미 레슨 프로
ilhee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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