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창] 말 욕심

2019-10-01 (화) 유명현(동시통역사)
크게 작게
얼마 전 우연히 지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말 욕심으로 무장한 초면의 누군가와의 대면이 있었다. 계속 듣다가 어느새 한계에 봉착했다. 한참 높은 연배에 게다가 초면이라 예의상 들었지만 점점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이야기 주제의 대부분이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가 아니라 몇 다리 건너 전해 들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는 것이었다. 껄끄러운 기색을 할 수가 없어 끝까지 듣느라 큰 곤욕을 치렀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말은 솔직히 나 자신에게조차 어려운 일이다. 작정을 하고 듣다가도 어느새 상대보다 말을 많이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의하면 인간이 입이 하나, 귀가 둘이 있는 이유는 말하기 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말을 많이 해서 더 유식하게 보이려 대화에 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화를 통해 비호감으로 낙인 찍힐 분이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 가로막거나 지나친 언쟁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성급하게 자신의 관점으로 토로하면서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의 말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의문일 뿐이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말이 많은 사람일수록 적이 많다.

평소에 나를 잘 경청해 주던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사람일수록 함께하는 것이 행복하고 배울 점도 많았다. 평소에 경청을 잘 하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은 머리와 가슴에 담아두고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최선이요. 차선은 말을 하더라도 꼭 할 말만 골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말을 하면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하여 언행일치로 그 갈음을 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앞으로 나도 조심해야겠다. 아랫사람에게 존경받고 싶을수록 행동으로 증명시켜야 할 것이기에.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라는 말도 있는데 말을 늘어놓을 시간에 귀를 열고 지갑을 함께 열 수 있도록 여러모로 수련해야 하겠다.

<유명현(동시통역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