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똑똑한 우리 딸 결혼은 언제…

2019-09-27 (금) 12:37:00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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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여 소식이 끊겼던 지인을 얼마 전에 만났다. 그동안 리스 문제로 사업을 접어야 했고, 남편이 지병을 얻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1.5세 남매가 약사로, 의사로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는 것은 좋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마흔을 넘긴 남매가 둘 다 미혼이라고 했다.

남매가 30대 중반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던 지난 몇 년 그는 “할 만큼 했다”고 한다. 자녀결혼을 위한 한인부모 모임들에도 가보고, 결혼알선 기관들에도 가보고, 친지들을 통해 소개도 받아보고, 자녀를 닦달해보기도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엄마들끼리 마음 통한다고 당사자들도 맞는 건 아니더군요.”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니 그의 딸이 엄마를 모시러 왔다. 늘씬한 외모에 상냥한 태도, 연봉 6자리숫자인 유명 종합병원 의사 …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재원인데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1세 엄마들의 자랑인 똑똑한 딸들 중에 결혼 못한/안한 여성들이 많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집에도, 저 집에도, 그 집에도 … 마흔 넘어 미혼인 딸들이 쉽게 떠오른다. ‘결혼을 꼭 해야 하나?’ 회의적일 수 있고,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걸 선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의 결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결혼현황과 관련 권위 있는 학술지인 ‘결혼과 가족 저널’ 9월호에 흥미로운 연구가 실렸다. 저널은 1938년 설립된 전국가족관계위원회(NCFR)의 잡지이다.

코넬 대학의 대니얼 릿처 박사가 주도한 이 연구를 보면 여성들이 결혼을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변변한’ 남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학력, 직업, 소득 면에서 신붓감에 걸맞은 신랑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신랑감 수요와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미국의 결혼률은 지난 150년래 바닥이다. 퓨 리서치에 의하면 1960년 미국에서는 성인의 72%가 결혼했다. 지금은 50%가 결혼했을 뿐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동거가 성행하는 것이 부분적 원인이다. 정신적 재정적으로 독립적인 여성들이 늘고 이혼이 자연스런 풍조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또한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여성이 볼 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동할 만큼 경제적으로 안정된 남성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콕 집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는 미국 커뮤니티 서베이 2008년부터 2017년 데이터를 이용했다. 인종, 교육, 소득 면에서 유사한 여성들을 대상, 결혼한 그룹의 남편들을 조사했다. 미혼인 여성들 또한 배우자로 유사한 조건의 남성을 원할 것이라는 전제이다.

그 결과를 보면 결혼한 남성들은 미혼인 남성, 즉 신랑감 후보들에 비해 평균소득이 거의 60%, 직장이 있을 확률이 30%, 학사학위를 가졌을 확률이 19% 높다. 소득과 학력 등 경제적인 면에서 여성들이 원할만한 남성은 그만큼 적다는 말이 된다.

연애는 사랑으로 시작되지만 관계가 결혼으로 이어지고 결혼생활이 존속되게 하는 열쇠는 경제적 안정이라고 릿처 박사는 말한다.


연구진은 연봉 4만 달러 이상 혹은 학사학위 소지를 괜찮은 신랑감의 기준으로 정의했다. 여성의 학력이 올라갈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소득은 높아지고 배우자감 기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혼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변변한 신랑감 부족사태를 취리히 대학 연구진은 제조업 쇠퇴와 연관 지었다. 20세기 미국의 남성들은 고등학교만 나와도 쉽게 취직해 고임금을 받았다. 철강, 기계, 석탄 관련 제조업 분야는 특히 보수가 많았고, 일이 위험한데다 강한 힘을 필요로 해서 전통적 남성성과도 연결되었다. 돈 잘 버는 근육질의 남성들은 신랑감으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자동화 등으로 제조업 일자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제조업이 쇠퇴하면 해당 지역 결혼률과 출산율이 동반 추락한다. 자포자기에 따른 남성들의 과도한 음주와 흡연, 비만 등으로 인한 조기사망도 늘어난다.

한편 여성들의 입지는 날로 좋아지고 있다. 2019년은 미국에서 대졸 노동력 중 여성이 남성을 추월하는 첫 해가 될 것이라고 퓨 리서치 센터는 분석했다. 대학 캠퍼스에는 여학생이 더 많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도 여성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집집마다 딸이 아들보다 더 잘 나가는 경우가 많고, 부모들 특히 엄마들은 그런 딸이 자랑스럽다. 단 결혼문제가 뒤늦게 걱정거리로 등장한다.

“딸은 입장이 분명해요. 사랑하는 사람 만나면 결혼한다, 아니면 안한다는 것이지요. (딸이) 이다음에 늙어서 외로울까봐 걱정이지만 결혼이 곧 행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 항상 남편이 아내보다 더 돈을 잘 벌어야 할까? 아내의 학력이 더 높으면 왜 불편할까? 전통적 남녀역할 인식이 바뀌어야 신랑감 부족사태도 해결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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