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썼지만 최근 한국에서 더 널리 알려진 책이 한 권 있다. 뇌기능 장애, 정신질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바른북스)가 바로 그 책이다. 얼마 전 발간된 뒤 3쇄에 들어가, 인터파크 e북 베스트셀러 10위에 오르기도 했다.
남가주 한인들은 이 책에서 그들 가족이 겪은 뇌질환의 고통스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여동생 2명이 뇌기능 장애 환자인 정신건강가족미션의 김영철 목사가 사례들을 전하고, 기자였던 김인종씨가 여기에 관련내용을 더해 공저 형태로 나온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혼의 싸움터를 추적한 르포’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해병장교로 아프간 전쟁에 참전한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얻어 홈리스가 된 한인 2세 청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어둡고 아프다. 이민생활에서 성공한 아버지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은 존재.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애성 인격장애(NPD)가 심각한 이 가장은 두 딸의 뇌질환을 촉발시킨다. 결혼 후까지 이어지는, 정도가 넘는 어머니의 과보호는 아들을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로 몰고 간다.
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다가 신문에 나는 거구나”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은 가정이 한 둘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은 살면서 겪는 다른 어려움들은 다소 한가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무지한 신앙은 이런 환자들을 돕기보다 오히려 악화시키기도 한다.
‘죽고 싶은데-’가 발간된 뒤 정신건강가족미션(www.mhfmus.com)에 도움을 청하거나 연결된 한인가정은 120가정에서 230여 가정으로 늘었다. 라스베가스에는 지부가 생겼고, 한국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다. 뇌기능 장애 때문에 고통 받는 이들이 곳곳에 많지만 우리가 미처 몰랐을 따름이다.
뇌 질환자가 있는 가정에 들어가 본 사람은 그곳은 딴 세상이었다고 전한다. 바깥과는 격절된 동굴 같은 세계에서 가족들은 환자와 24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뇌 기능 장애자들의 문제는 병원까지가 너무 먼 길이라는 것이다. 본인이 병을 인정하지 않고, 병원을 거부하면 데려갈 수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주립병원까지는 간다고 해도 환자는 많고, 수용시설은 태부족이어서 조금 안정되는 기미가 보이면 대개 2주 안에 집으로 보내게 된다.
뇌질환은 전염병이 아니지만 전염성이 강하다. 환자를 집에서 돌보던 가족들은 쌓이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혼자서는 버티기 힘든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6년 전부터 정신건강가족미션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김인종씨는 3년 전 김영철 목사와 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로 했다. 이 세계를 너무 모르는 사람들에게 바로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외부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만 전하면서, 뇌 기능 장애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깨우칠 수 있는 지식과 사례들을 더하는 작업을 1년 반 정도 한 끝에 이 책은 나왔다.
뇌질환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약으로 조절하고 다스리며 함께 가는 병. 적절한 약물치료가 병행되면 학교도 가고, 직장생활도 하면서 정상적인 일상생활에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약을 끊고 지내다 시그널이 와도 약을 멀리하지 않도록 늘 관심과 격려가 필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뇌 기능 장애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는 병, 사람을 기피하는 병이기도 하다. 정상생활로 이끌려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햇볕 아래 걸으면 치유효과가 크다. 하루 하이킹을 다녀오면 달라진 모습이 느껴질 정도라고 김인종씨는 전한다. 이들을 숲길로 이끌 수 있는 자원봉사자가 필요하고, 가족모임을 통해 이야기만 들어 줘도 지친 가족들은 힐링이 되고, 힘을 회복하게 된다.
애나하임과 토랜스, LA 등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 정신건강가족미션 가족들의 이야기는 캄캄한 곳에서 시작하지만 어려운 과정을 거쳐 회복과 감사의 길로 들어선다.
이 책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적지 않은 사람이 실은 이 범주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현실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해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 인간정신은 갈등을 겪고, 감당할 수 없을 때 질환으로 나아간다. 인간정신의 허약함에 대한 자각과 그 깨달음에 대한 공유가 이뤄지는 곳에서 이 책은 보편성을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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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