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입법부의 표결에 의해 고위 공직자를 해임하는 제도다. 아무리 국민이 뽑은 공직자라도 잘못을 했을 때 쫓아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필요하나 그 자리에 앉힌 이상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나라는 탄핵제도를 마련해놓고 있으나 이를 통해 공직자를 해임하는 것은 어렵게 해놓고 있다. 그 대상이 최고위 직인 대통령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는 연방하원 절반의 찬성에 상원 2/3의 유죄 평결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가장 오래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나라인 미국에서 건국 후 지난 230여 년 간 탄핵으로 쫓겨난 대통령은 한 명도 없다. 남북전쟁 직후 하원에서 탄핵된 앤드루 존슨은 상원에서 단 한표 차로 유죄 평결에 실패하는 바람에 대통령 직을 유지했고 워터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닉슨은 탄핵으로 쫓겨날 것이 확실시되자 스스로 물러났다.
90년대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와 바람을 피운 후 그런 적이 없다고 위증했다가 물증이 나오는 바람에 하원에서 탄핵됐으나 역시 연방상원에서 유죄평결을 내리는 데 실패해 대통령 직을 유지했다. 탄핵에 실패하면서 오히려 이를 주도했던 뉴트 깅그리치가 하원의장 직에서 물러났다.
한국에서도 2004년 193대 2라는 압도적 표차로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가 역풍을 맞아 거꾸로 이를 주도한 한나라당이 존립 위기를 맞았다.
이처럼 탄핵은 당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추진하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위험이 있는 행위다.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이 당내 일각의 트럼프 탄핵 시도를 최근까지 막아온 것도 이에 실패할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펠로시 의장은 24일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트럼프에 대한 탄핵 절차에 공식 돌입했다. 펠로시를 탄핵 쪽으로 기울게 만든 결정적 사유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전화를 해 정적인 조 바이든과 그 아들에 대한 비리를 파헤칠 것을 종용했고 이에 때맞춰 의회가 승인한 우크라이나 군비지원금 4억 달러 송금을 지연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공개한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전화 녹취록에 따르면 트럼프가 바이든 일가의 비리 사실을 캐달라고 부탁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는 군비 송금지연은 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전부터 러시아에 힐러리 클린턴 이메일을 해킹하라고 촉구하고 코미 FBI 국장이 국가안보보좌관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명령을 거부하자 해임했으며 포르노 스타와 관계를 맺고 돈으로 입을 막았고 특별검사를 해임하려고 기도했지만 부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행위들은 현직 대통령만 아니면 사법방해로 기소되고도 남을 일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도부는 트럼프 탄핵작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유죄평결이 날 가능성은 희박하고 이에 실패할 경우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했다며 대선 캠페인 내내 떠벌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탄핵절차에 돌입한 것은 국가안보와 외교마저 자신의 선거캠페인에 이용하려는 트럼프의 행동이 일반 유권자들 보기에 대통령으로서의 자격미달임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낙타의 등뼈는 튼튼하지만 아무리 튼튼해도 이를 부러뜨릴 마지막 지푸라기는 있는 법이다. 과연 이번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트럼프의 등뼈를 꺾을 수 있을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