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다, 그 고요하고 치열한 곳으로

2019-09-12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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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샌타 크루즈 섬 근해에서 선상 화재로 34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지난 노동절 연휴. 다이버 케빈에게 텍스트를 보냈다. ‘I’m OK’라는 메시지가 바로 오지 않았다면 걱정했을 것이다. 그는 일 년에 200회 정도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참사가 일어난 컨셉션 호를 타고도 여러 번 다이빙 트립을 다녀온 적이 있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가 일어난 그 주말, 그는 바다 대신 산으로 갔다고 한다.

케빈 리씨는 수중 사진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과 동영상 등 2만여 점의 자료가 올려져 있는 그의 사이트 diverkevin.com은 월 평균 조회 수가 10만여 회에 이른다. 수중 촬영한 해양 생물을 잘 모를 때는 이 사이트에 들어와 이름을 확인할 정도로 해양생물학 관계자나 동호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2002년부터 스쿠버 다이빙을 시작했다는 그는 빙산이 떠 있는 남극해 등 7대륙의 바다 속을 모두 탐사했다. 그는 특히 바다 민달팽이(sea slug) 전문가로 꼽힌다. 3,000여 종의 시 슬러그 중에서 그가 촬영한 것은 300~400 종. 7년 전 아프리카 케냐의 바다에서 그가 발견한 민달팽이는 그의 이름을 따 ‘Placida kevinleei’라는 학명으로 명명됐다. 해양 생물학계에 처음 보고된 개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작고 아름다운 시 슬러그는 보호 장비인 각질로 된 집이 없는 대신 위장기술이 뛰어나 포착이 쉽지 않다고 한다. 파푸아 뉴기니 등 오세아니아의 열대 바다에 많으나 영하의 남극해 등 세계의 바다에 두루 분포돼 있다. 그의 시 슬러그 사진작품들은 채프만 대학 등이 영구소장하고 있다.

18파운드짜리 카메라 등 다 갖추면 80~100파운드 정도 된다는 무거운 잠수장비를 지고 그가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무엇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수백만 마리의 고기떼가 이동하는 광경 등은 바다 속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수심 60피트 정도가 안전한 깊이라고 하지만 160피트까지 내려가 촬영한 적도 있다.

바다 속은 고요하고 치열한 곳이다. 수면 위의 세상과 단절되는 순간, 정적 일순의 고요가 펼쳐지지만 그 세계는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의 장이다. 잔혹한 전쟁터라는 말이 실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인간사회의 때로 비열한 밥그릇 싸움도 바다 속에 비하면 그래도 인간적일 정도다.

바다 속에서는 상어의 이빨이 무서운 게 아니라고 한다. 살아남아야 하므로 바다 생물들은 대부분 비장의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작다고, 연약하게 보인다고 얕보다간 낭패를 당한다. 인도네시아 앞 바다에 분포돼 있다는 아름다운 꽃성게는 찔리면 치명적이다. 갑옷을 벗어던진 바다 달팽이, 시 슬러거는 몸 자체가 독인 것도 있다.

그는 보통 밤 9시쯤 되어서 잠수를 시작한다. 밝은 빛을 피해 낮 동안은 어디 숨어 있거나 죽은 듯 엎드려 있던 별별 희한한 놈들이 그때부터 먹이 활동을 위해 떠오르기 때문이다. 깊고 그윽한 산에서도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수런거리는 기색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바다 속처럼 어둠이 내리기 시작해야 비로소 움직이는 산 짐승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중촬영은 조명을 밝힌 채 밤 12시까지 주로 야간작업으로 진행된다.

그는 UC 샌타 크루즈와 시에라 클럽 등에서 100여회에 이르는 초청강연도 했다. 롱비치의 퍼시픽 아쿠아리엄에서 했던 한 시간짜리 강연 동영상을 보면 “아마추어일 뿐”이라는 말이 겸양으로 느껴진다. 그는 LA카운티 자연사박물관의 해양생물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진과 함께 샘플도 채취해 공급하면서 전국에서 해양생물학자들이 모이는 박물관의 연례 해양생물 학술대회에 빠지지 않는다.

생업으로 무역업을 하는 케빈 리씨는 3살 때 의정부에서 길을 잃고 1년 후 홀트재단을 통해 미국에 온 입양인. 양 어머니가 4사람, 양 아버지가 3사람이 될 정도로 입양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한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친부모를 찾은 적도 있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 후 40개가 넘는 나라를 다니며 방랑 같은 여행도 했다. 인도에는 1년 이상 머물렀다고 한다. 마더 테레사도 만나고, 달라이 라마도 만나고, 오지의 높은 산도 올랐다.

바다 밑이나, 오지의 길 위나, 미국에서의 삶도 그에게는 모험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98년 된 LA모험가클럽(LA Adventurers’ Club)의 유일한 한인 회원. 타이태닉 등을 감독한 영화인이면서 잠수정을 타고 바다 속 최저점인 11킬로미터까지 내려간 심해 탐험가이기도 한 제임스 캐머런 등이 회원인 이 단체에서 그는 올해의 인물로도 뽑히고, 이사로 활동할 정도로 열심이다. 핏줄보다 가슴으로 맺어지는 관계가 더 진정한 연대가 아니겠느냐고 그는 말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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