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랜(Phelan)에는 지난 겨울에 눈이 6번 왔다고 한다. LA 코리아타운에서 동북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여기는 과자 봉지가 부풀어 오를 정도로 지대가 높다. 가끔 눈 구경이 가능한 곳이지만 비가 많았던 지난 해는 눈도 잦았다. 레베카 신씨는 눈이 올 때면 페이스북과 인스타 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눈 내리는 광경을 중계했다. 눈이 오면 알려달라고 부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레베카씨 부부의 필랜 카페로 차를 돌려 오기도 했다.
공방을 겸한 힐링 공간이라는 이들 부부의 카페 이름은 ‘I think so.’ 한국말로는 ‘그래’ 정도로 풀면 될 지 모르겠다. 부부는 3년 전 살림집과 차고가 따로 있는 2.5에이커 규모의 집에 이사한 뒤 차고를 카페로 개조했다. 유리로 된 선 룸을 달아내고, 주방을 새로 들였다. 따뜻한 온실이기도 한 선 룸에 눈이나 비가 올 때 앉으면 스스로 풍경의 일부가 된 듯하다고 한다. 카페 공사는 남편 조셉씨가 했다.
카페에 놓인 기다란 탁자들은 부인의 작품. 손 때 묻은 고가구처럼 보이지만 울타리 판자를 붙여 만든 것이다. 부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러니 이런 카페도 엄두를 냈을 것이다.
이 카페는 활용하기에 따라 동네 사람들에게는 사랑채, 좀 멀리 사는 사람은 당일치기 여행 기분을 낼 수 있다. 전형적인 캘리포니아형 사막인 황무지에 자리잡고 있어 도심의 주택가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긴 시간 들이지 않고 와서 잠시 일탈의 순간을 맛볼 수 있다.
이 카페(www.ithinkso-store.com)는 원칙적으로 예약제로 운영된다. 예약이 있으면 카페 공간을 다른 손님과 겹치지 않도록 배려한다. 일행끼리 편하게 시간을 보내다 가시라는 뜻에서다. 커피와 꽃차 등은 있지만 파스타 등은 하루 전에 주문해야 한다.
몇 명 단위의 소그룹이나 동호회 모임 등을 가져본 뒤 다시 찾는 경우가 많다. 막걸리를 가지고 갈 테니 파전을 부쳐달라는 그룹이 있었는데 마침 형편이 돼 준비해 준 적이 있다고 카페 바깥 주인은 전했다. 가족이 와서 캠핑과 캠프 파이어를 하기도 한다. 터가 넓어 이런 바깥 생활이 가능하다. 이 집에는 진도와 풍산의 혼합종인 통일견 한 마리와 진돗개 두 마리도 같이 살고 있다. 주위가 황량하지만 코요테 정도는 상대가 되지 않을 자체 완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I think so’는 공방이기도 하다. 어른과 아이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아트 워크샵도 열린다. 팝 아트 초상화, 티셔츠 제작, 가죽과 천으로 만드는 수제 핸드백 등 작업 내용은 다양하다. 카페 안주인은 한국서는 헤이리 예술마을과 인사동에 작업실과 가게를 두고 활동했던 작가.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뒤 북 아트, 가죽 공예 등을 했다. 이런 공방이 가능한 이유다.
카페에서는 지난 봄에 파머스 마켓도 열렸다. 지역 한인들이 생산한 다양한 자연식품들이 나왔다. 소셜미디어로 알렸더니 사흘간 수 백명이 왔었다. 호응이 좋아 일년에 한 두 번 할 계획이다.
다양한 자체 모임 횟수도 늘려 나가고 있다. 지난해 싱글 모임에는 60여명이 참석했다. 여기서 맺어진 커플도 있다고 한다. 지난달 바비큐 이벤트에도 40명 이상이 참석했다. 참가비는 무료. 주인 내외가 스테이크 저녁을 대접했다. “생각보다 얼마 들지 않았다”고 하지만, 요즘 고기 값은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주위에서 오히려 이런 카페 운영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렌트비 부담이 없고, 내외가 따로 다른 일도 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남편은 일주에 이틀 정도 LA로 출근하는 파이낸셜 어드바이저, 부인은 원격으로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도 지난 팬데믹 때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아주 어릴 때 미국에 온 남편 조셉 신씨는 자원봉사 경력이 다양하다. LA 한인 청소년을 중심으로 결성된 보이 스카우트의 대장만 30년가까이 하고 있다. 말 많았던 지난 여름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에도 대원들을 인솔해 다녀왔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잇는 PCT 종주에 도전하는 한국인들을 지원하는 트레일 자원봉사도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다.
이런 경험 등을 바탕으로 그는 재난에 대비한 한인 서바이벌 스쿨(kmagsurvival.com)도 운영하고 있다. 지진대인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멀지 않은 데를 지난다. 재난 위험을 늘 의식할 수밖에 없다. 적지 않은 한인들이 그에게서 재난 시 생존 교육을 받았다.
몇 년 전 트레일 자원봉사 일로 잠시 만났던 이들 부부의 근황은 얼마전 신문에 난 짧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 싱글 모임인가를 한다는 알림성 기사의 연락처가 이들이었다. 웬 싱글 모임을, 궁금해서 연락했더니 이들 부부는 이제 카페까지 열어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만나, 교유하고, 나누며 살고 있었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과는 좋은 말벗이 된다고 한다. 상대가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하자는 뜻에서 카페 이름을 ‘아이씽소’로 지었다. 이런 류의 일들은 권한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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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