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천연 가루인 티카를 이마에 바르고, 손바닥엔 붉은 타투를 한 어린 여섯살 소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엷은 천에 금박으로 수놓아진 붉은 사리와 머리 위의 화려한 장식구는 소녀가 그날의 주인공임을 말해주는 듯 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작은 의자에 앉히고 깨끗한 물로 발을 정성껏 씻겨준 후, 겉이 돌처럼 단단한 애플 우드를 그녀의 양손에 건네 주었다. 그것은 Bell fruit이라고도 불리우는 열대 과일이었다. 소녀는 노란색 천으로 과일을 감싸고 마당을 돌았다. 작은 손이 과일을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그 어린 소녀는 그 의식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고 있었을까? 그녀는 이제 평생 동안 Bell fruit이 상처가 나지 않도록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그날은 소녀가 남편으로 Bell fruit을 맞이한, 이히(Ihi)라 불리는 첫번째 결혼식이었다.
소녀는 자라 어느덧 11살이 되었다. 그녀는 다시 붉은 사리를 입고, 붉은색 티카를 이마에 바르고, 11일 동안 어두운 방에 들어가 혼자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의식을 치러야 했다. 그전에는 어두운 방을 절대 나와서도 안되며, 홀로 고독한 시간을 견뎌낸 후 12일이 되는 날에야 비로소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리고 12일째 되던 날 소녀가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바하라(Bhara)라 불리는 두번째 결혼식이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독과 어둠 속 두려움을 이겨낸 후 맞은 소녀의 반려자는 ‘Sun’. 아직 여인이 되기 전, 12살 소녀는 그렇게 하늘의 태양을 두번째 반려자로 맞이했다.
네팔의 카투만두에는 네팔 전체 인구의 약 5.4%의 네와르족이 살고 있다. 이들 네와르족 여인들은 성인이 되기 전 모두 이히(Ihi)와 바라하(Bhara)라 불리는 두번의 결혼식을 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13세기경 당시 네팔에는 이슬람 세력이 북부지방으로 밀려오며, 이들로 인해 종종 네팔의 처녀들이 성적으로 희롱당하는 일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네팔의 네와르족 여인들의 조혼 풍습은 이러한 아픈 역사로 인해 정착되어 왔지만, 이히와 바라하엔 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소녀의 첫번째 결혼은 실제로는 Bell fruit라는 과일과의 결혼이었지만 상징적으로 신(‘God’)과의 결혼이었다. Bell fruit이 그들이 믿는 신의 아들이라 여기고, Bell fruit과 결혼 함으로써 신의 보호를 받는다고 믿었고,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도 같았다. 두번째 결혼식은 소녀가 어둠과 고독을 이겨낸 후 성숙한 여인이 되어가기 위한 의식으로, 태양이 어둠에 속하는 불길한 것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녀는 성인이 되어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반려자로 맞이하는 세번째 결혼식을 하게 된다.
그녀의 세번의 결혼식. 네와르족 여인은 실제 남편이 운명을 달리 했을 때에도 그녀 스스로 남편을 잃은 과부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그녀는 Bell fruit과 첫번째 결혼을 했기에, 그녀가 믿는 신과의 결혼으로 그녀 자신을 좀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힘을 갖게 된 것일까? 그녀는 어쩌면 전통적인 네팔의 문화에서 누군가의 소유가 아닌 한 여인으로써, Bell fruit의 단단한 껍질과 같이 강인하게, 태양과 같이 밝게 세상의 어둠과 편견을 헤쳐 나가며 살아가길 바라는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8월이 지나고 어느덧 9월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광복 74주년을 맞은 올해,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서울 남산에 세워졌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공개 증언한 이후, 2017년 이후 매해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 기림의 날’로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어린 소녀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민들과 함께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정기 집회를 열었고, 이후 27년간 1400회를 넘기고 있으나 일본의 공식 사과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네팔의 어린 소녀는 두번의 결혼식 이후 자라 성숙한 여인이 되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어머니가 되었다. 누군가에는 평범한 삶이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었다. 몇해 전 어느 가을 집회가 열리던 날, 일본 대사관의 정기 집회에서 만났던 위안부 할머니는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했던 우리의 소녀들이었다. 집회 후 자리를 떠나시던 그분의 손에 작은 핸드 크림을 전해 드렸다. 단단한 과일 껍질과 같이 강한 마음으로, 어둠과 두려움을 매일매일 이겨내야 했었던, 단 11일이 아닌 수만의 날들을 이겨내야만 했던 소녀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거칠고 주름져진 그 소녀의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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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한문협 회원 김소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