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희망적인 다민족 국가

2019-08-26 (월) 12:00:00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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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언론이 늘 떠들썩하다. “트럼프는 원래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정없이 쏘아대고 있다. 내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강력한 무기로 여기는 듯하다.

‘인종차별’이란 주제는 미국에서 대단히 민감하다. 미국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이민으로 시작된 나라이고 가장 다수의 민족들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더욱 발끈 하는 듯하다.

나는 미국에서 5년, 호주에서 5년 반, 영국에서 7년을 살았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하면 내게 가장 소속감을 준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적은 시간을 보낸 미국이었다.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받는 질문은 “넌 미국 어디 출신이니?”라는 것이었다. 아시안 외모를 가졌지만 미국 발음으로 영어를 하면 보통 미국에서 태어나 살아온 이민자려니 하고 묻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태어나고 명문 보딩스쿨을 마치고 영국여왕이 쓴다는 ‘posh’ 영국발음을 가진 내 한국친구에게 영국 사람들이 주로 하는 질문은 “너 영어를 어디서 배웠니?”였다.

아시안으로서 영국에 사는 이민자나 영국사회의 일원으로 그 친구를 가정하기 보다는 언제 영국에 와서 그런 발음을 습득했느냐는 의미에 더 가까운, “너는 외국인이야” 라는 의미가 내재된 질문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뉴욕에서 만나는 유럽계 친구들과 런던에서 만나는 유럽계 친구들의 발음이었다.

런던에서 만난 유럽계 친구들, 즉, 영어에 자기 모국어 발음을 심하게 섞어 쓰기로 유명한 유럽인들 발음은 제각각이다. 예를 들면, “to be honest with you”를 “투비 허니슷 위슈유” 라고 영어를 아예 프랑스 발음으로 말하는 프랑스 친구들, “I have a problem”을 “아이 햅 어 프로블레므” 같이 끝의 알파벳에 꼭 힘을 주는 이탈리아 친구들, 아니면 ‘restaurant’를 “레스타우라운트” 같이 모든 알파벳을 하나하나 꼬박꼬박 발음하는 스페인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미국에 가게 되면 그 심했던 발음들을 하나같이 미국 발음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한다. 미국 발음이 가진 특성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미국이라는 곳은 어느 정도 미국 발음을 구사하면 미국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그럴 것이라고 느꼈다.

런던에서는 아무리 영국발음을 구사해도 전혀 영국의 일원으로 간주해 주지 않는 분위기라서 아예 노력조차 안 하는 것 같다.

뉴욕이 여러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하나의 동질적인 문화로 융합되어지는 ‘멜팅팟’ 즉 용광로라고 하면 런던은 샐러드 그릇 속에 담긴 다양한 재료들처럼 각각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샐러드 볼’이다.


이는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외국인과 이민자에 대해 좀 더 수용적이라는 생각이다. 영국은 이민으로 형성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만큼 타민족에 수용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정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트럼프의 인종차별적 발언들은 미국사회에 다시 한번 경각심을 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국가이고, 수많은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들이 부글부글 끓여진 용광로로서 더 큰 자산을 가진 강한 나라임을 인지했으면 한다.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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