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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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심사평...“자신의 체험과 사색의 주체 드러나”

2019-08-22 (목) 박덕규 문학평론가,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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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편에 이르는 수필을 읽었다. 거의 50명에 이르는 투고자의 것이었다. 문단 나누기, 들여쓰기 등을 지켜 산문의 형식을 잘 갖춘 글도 많았지만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그냥 편하게 서술해 놓은 글 또한 적지 않았다. 컴퓨터 자판을 활용해 A4용지에 프린트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원고지나 흰 종이에 정서한 글도 있었다. 연령층이 대체로 중년 이상이라는 것, 급변하는 한국어 문화의 사정과 멀어져 있다는 것, 한글 자판에 익숙지 않거나 아예 한글 사용이 안 되는 컴퓨터를 쓰거나 한다는 것 등 투고자들이 처한 환경도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모국어 문학을 향한 간절함만큼은 하나같이 간절하게 다가왔다.

수필은 시나 소설에 비해 글쓴이 자신이 체험과 사색의 주체로 직접 드러난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 점은 도리어 글쓴이나 독자로서 모두 내용과 형식면에서 범주와 기준을 잡기가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3000글자 안팎으로 남다른 체험을 짜임새 있는 구성과 세련된 문장에 담아 뜻깊은 깨달음을 전하는 문학은 어쩌면 하나의 희망사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글은 체험의 무게감이 앞서는 대신 이를 받쳐줄 문장력이 문제가 되고, 어떤 글은 재미있는 체험에 비해 독자가 새롭게 느낄 만한 인식 반영이 얕다. 올해는 유난히 체험의 구체성이란 점에서 여느 때에 비해 읽을거리가 많았으나 대개는 그것을 오늘 내 삶의 자리로 균형 있게 끌어오는 능력은 크지 않아 보였다.

여러 차례 재독 끝에 일곱 편의 수필을 두고 순위를 정하게 되었다. 바로, 김흥기의 ‘열쇠가 지붕 위에 올라앉은 날’, 김정숙의 ‘코코의 러브레터’, 유연훈의 ‘괜찮다는 것과 It‘s OK’, 차문환의 ‘어금니’, 김성애의 ‘Homeless’, 홍성철의 ‘너의 이름, 물푸레’, 조경선의 ‘나비와 장미’ 등이었다. 이 가운데 ‘괜찮다는 것과 It’s OK’ ‘너의 이름, 물푸레’는 글감을 인식하는 논리를, ‘코코의 러브레터’ ‘나비와 장미’는 체험을 구체화하는 시선을, ‘열쇠가 지붕 위에 올라앉은 날’ ‘어금니’ ‘Homeless’는 체험을 객관화하는 능력을 각각 인정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전체적으로 문장과 구성에서 안정감이 더 느껴지는 3편을 최종에 올려 숙고했다.


‘괜찮다는 것과 It‘s OK’는 남편의 언어습관으로 빚어진 이민생활에서의 마찰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다. 이것이 ‘사적 의미’에 머물러 ‘문화 충돌’에 대한 남다른 해석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코코의 러브레터’는 ‘봄볕의 유혹’에 애완견 코코와 함께 산책으로 호응한 사연을 부담 없이 펼쳐 놓는다. 코코가 옛 연인 로즈를 생각하며 쓴 ’러브레터‘를 시각화한 재치는 돋보이지만 이를 더 뜻깊은 사랑론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열쇠가 지붕 위에 올라앉은 날’은 덩치 큰 개와 부딪쳐도 전혀 기죽지 않고 대드는 조그만 애완견의 모습으로부터 심한 텃세에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텨낸 이민 초기 체험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과거 일을 눈앞에 있는 듯 실감나게 그려낸 것에 비하면 ’체험‘ 이상의 논리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세 편 모두 무엇보다 마무리에서 기세를 힘있게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문장을 이어가는 자연스러움에서는 ‘괜찮다는 것과 It’s OK’ ‘코코의 러브레터’ ‘열쇠가 지붕 위에 올라앉은 날’ 순이라 할 수 있겠는데, 소재가 주는 재미와 부피 면에서는 그 역순으로 평가되었다. 이 심사에서는 이 중 후자를 택해 순위를 결정했다. 특히 ‘열쇠가 지붕 위에 올라앉은 날’은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들이 모두 뜻깊은 경험을 글감으로 찾아 그것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 평가에 보탬이 되었다. 세 분은 이번 입상을 계기로 보다 전문작가답게 당당한 필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 공모전은 미주 여러 지역에서 모국어로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을 새로이 발굴해 한국문학의 특별한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격려하자는 취지로 전통을 이어왔다. 따라서 이미 앞선 시기에 이런저런 공식 지면에 발표를 하기 시작해서 작품집까지 가진 투고자의 글은 논외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박덕규 문학평론가,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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