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에 대한 모욕’

2019-08-2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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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한때 뉴욕 한인회장을 지낸 미주 출신이다. 그가 미국에 있을 때 전두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김대중을 극진히 모신 인연으로 그가 대통령이 되자 김대중의 심복이자 복심으로 활동한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데도 그의 공이 컸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불법 대북송금 혐의로 구속돼 2006년 징역 3년형을 받았다. 2007년 2월 특별사면 조치로 형 집행이 면제되고 그해 12월 복권됐다. 어쨌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옥고를 치른 셈이다.

그런 박지원에 대해 북한은 19일 맹비난을 퍼부었다. 조선 중앙통신은 ‘혓바닥을 함부로 놀려대지 말아야 한다’는 논평에서 박지원이 “마치 자기가 6.15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주제넘게 자칭한다”며 “이번에도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겼다”고 조롱했다.


이 통신은 이어 그는 “도덕적으로 덜 돼먹은 부랑아고 추물”이며 “6.15 시대에 평양을 방문하여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노죽(아부)을 부리던 이 연극쟁이가 우리와의 연고 관계를 자랑거리로, 정치적 자산으로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인데 이제 와서 배은망덕한 수작을 늘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박지원이 이렇게 욕을 먹은 것은 북한이 지난 17일 정주영의 고향인 통천에서 미사일을 쏜 것을 가지고 “고 정주영 회장님의 고향인 통천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2회 발사한 것은 최소한의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며 “남북 교류를 위해 소떼 방북과 평양에 정주영 체육관을 건설해 주신 정주영 회장님 상징성을 생각해서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한마디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북한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웃어 넘긴다”고 말했다.

북한이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애쓴 사람을 모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 한 달간 수없이 미사일을 쏴대며 ‘남조선 당국자’라 지칭한 사람에 대해 막말을 쏟아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 평화통일 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대한 논평에서 한국 야당의 논평을 인용하며 “태산명동 서일필”(태산이 울렸는데 쥐 한마리가 나왔다)이라고 일축하고 “섬나라 족속에게 당하는 수모를 씻기 위한 똑똑한 대책이나 타들어가는 경제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안도 없이 말재간만 부리었다”고 조롱했다.

조평통은 이어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북과의 평화경제를 추진하겠다는 문 대통령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며 “사고가 건전한가 과연 의문”이고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런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리고는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그대로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가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했다.

북한의 이런 맹비난은 하노이 미 북한 간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고 앞으로도 풀릴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는데 대한 화풀이라는 설, 미국과의 직접대화 통로가 열린 만큼 제재 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국과 더 이상 얘기해 봐야 시간낭비라는 판단이 섰다는 설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외신으로부터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북한의 입장을 변호해 온 인물을 이토록 모질게 공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과거에 자기들을 도왔다 하더라도 수틀리면 사정없이 물어뜯는 북한의 모습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저질스러움만큼 김정은 정권의 수준과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이전에도 막말을 쏘아댔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는 “아비를 개처럼 쏘아 죽인 미국에 치마폭을 들어 보이는 더러운 창녀” “암개 같은 년” “괴벽한 노처녀”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을 쏟아냈다. 그때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상대방 국가원수를 막말로 모욕하는 것은 국민 전체를 모욕하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모욕하는 것이다. 정부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야당과 시민단체, 촛불 혁명을 일으킨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 북한의 망동을 규탄할 때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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