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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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흐린 기억 속의 두부 한모

2019-08-08 (목) 채영은(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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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켓이나 미국 마켓에서 장을 보다가 브랜드나 용도별로 다양해진 식재료를 보면 요즘 애 키우는 엄마들에겐 참 좋아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년 전, 내가 해외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은 영국의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 인근의 작은 동네였다. 백일 지난 아기를 데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도착했던 그곳의 첫인상은 아주 평화로워 보였고, 초록의 언덕마다 양떼가 한가로이 풀 뜯는 그런 정경이었다(살아보니 아주 평화롭지도 않았고, 늘 보게 되는 양떼는 더이상 낭만적이지 않았긴 하다).

90년대 말 한국인 가정은 북아일랜드 전체 통틀어 서른 가구 정도였고, 초중등 학생을 둔 부모님들의 헌신과 봉사로 작게나마 토요 한글학교가 운영되고 있었다. 그 한글학교가 있던 곳은 우리집선 근 한 시간 거리로, 주로 중국제품이 주를 이루는 아시안마켓이 그 근처에 소재해 있었다. 그중에 상표도 없이 흰 플라스틱 박스에 담긴 손바닥만한 중국두부는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 저녁에 입고되었고, 토요일 아침 아이들을 한글학교에 내려주러 온 엄마들이 그 참에 일주일치 두부를 앞다퉈 사가지고 가면 거의 남아있지 않곤 했다. 한글학교 해당사항이 없었던 어린 아기를 키우는 지라 토요일 아침 일찍 그 시간에 두부사러 갈 수는 없었기에, 점심 때쯤 겨우 들러 휑한 두부 진열칸을 바라보며 한숨쉬었던, 당시로선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서울서 들고온 아기 이유식 간식 책마다 성장기 아기 영양의 보고로 두부를 꼽는 걸 보며, 가장 중요한 성장의 시기에 내 아이에게 제대로 좋은 걸 못먹인다는 미안함이 종종 들기도 했던 초보엄마였다. 한편 한국서 흔하게 먹던 두부부침, 두부조림, 두부김치, 두부찌개도 어찌나 반찬으로 눈앞에 둥둥 떠다녔는지 모른다. 어쩌다 귀퉁이가 부서진 한두개가 남은 걸 득템하고 냉큼 집어와 그날 저녁 맛있게 해먹었을 때의 그 행복감이란.

이제는 세월이 흘러 삶의 공간도 달라져서인가. 그렇게 간절하게 시판두부를 찾지도 않고, 언제나 손만 뻗으면 살 수 있기도 하고 간편한 외식에 익숙해져서인지 지금은 여러모로 둔감해졌다. 그땐 다른 식재료나 음식, 양념들도 하나같이 아쉽고 귀했음에도, 유난히 생두부 한모에 대한 생생하고도 찌릿했던 느낌은 이젠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채영은(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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