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가 친일파인가

2019-07-3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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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터지기 2년 전인 1590년 조선 정부는 일본이 과연 조선을 침범할 것인지에 대한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황윤길을 정사, 김성일을 부사로 하는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한다.

1년 만에 돌아온 이들은 서로 상반된 보고를 올린다. 황윤길이 “일본이 많은 병선을 준비하고 있어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며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안광이 빛나고 담력이 있어 보인다”고 보고하자 김성일은 “일본이 침략할 낌새는 전혀 없었으며 도요도미는 쥐와 같이 생겨 전혀 두려워할 것이 못된다”고 말했다.

황윤길은 서인이었고 김성일은 동인이었다. 조정 대신들은 당파에 따라 의견이 분분했으나 결국 김성일의 의견을 따라 쌓던 성마저 중단시키고 말았다. 나중에 같은 파인 유성룡이 김성일을 따로 만나 “그대의 말이 황윤길과 다른데 나중에 병화가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묻자 그는 “나도 어찌 왜적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일까봐 그런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조선 수군의 실력은 훗날 이순신의 전과가 말해주듯 일본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이의 십만 양병까지는 그만두고 함포가 장착된 전함 100척만 새로 건조하고 일본에 첩자를 보내 침공 시기만 알고 있었어도 일본 침략선을 부산 앞바다에서 수장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의 실상을 허위 보고한 김성일과 당파적 이익에 눈멀어 그의 주장을 수용한 동인들이야말로 한반도를 초토화시킨 1차적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후 280년이 지난 1871년 미국이 제너럴 셔먼호가 불탄데 대한 책임을 묻고 통상 교섭을 위해 해군을 파견하자 조선이 이에 맞서 대항하면서 3일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뜻밖의 강력한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미국은 그냥 돌아가고 만다. 자신의 힘으로 서양 오랑캐를 물리쳤다고 생각한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서양과의 일체의 교류를 금지한다.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를 하는 것이며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 자손만대에 경고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조선이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한 1871년 일본은 특명 전권대사 이와쿠라 도모미가 이끄는 구미 사절단을 미국과 유럽에 파견한다. 이들은 2년 동안 구미 12개국을 돌며 각국의 문화와 정치, 경제, 군사, 교육 등 선진문물을 배운다. 이 사절단에는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등이 포함돼 있다.

한 나라는 척화비를 세워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다른 나라는 적극적으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며 조선과 일본의 운명은 사실상 결정 났다. 40년 후 일본이 대한제국을 합병한 것은 두 나라 지도자가 내린 결정의 필연적 산물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대원군이야말로 한일합방의 1등 공신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좋건 싫건 겉으로는 친일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국신민 선서부터 창씨개명에 이르기까지 일제가 강요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인 문용현 씨는 1940년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을 지냈다는데 일제시대 공무원이면 천황에 대한 충성맹세를 했을 것이고 농업과장이면 일본으로 쌀을 공출하는 일에 앞장섰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를 친일파라 부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의 이름은 민족 문제 연구소가 만든 ‘친일 인명사전’에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생계형 말단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라 한다. 어느 직급부터 말단 공무원이고 어느 정도 친일행위를 해야 친일파가 되는 건지, 그 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 한국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토착 왜구’라 부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일제 때 많은 한국인들이 친일파로 변신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본에 붙은 사람도 있고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 친일파와 ‘토착 왜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단어들은 한때 정적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제거하던 독재정권을 연상시킨다. 지금 한국은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뭉쳐도 부족할 판에 잘못된 편 가르기로 스스로를 분열시키는 일은 그만두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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