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화적 냉전

2019-07-29 (월)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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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냉전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최근 한반도 연구를 20년이상 한 저명한 미국 교수님과 회신을 주고 받았다.

“교수님, 오랜 시간 한반도의 역사적 맥락을 학문적으로 연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계속된 ‘문화적 냉전’ 개념이 오늘날 한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논문을 통해 역사적 맥락 안에서 한국이 해석이 됩니다.” 동시에 나는 편지 말미에는 넌지시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그 전쟁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다음날 답장이 왔다. “한국의 냉전은 더 이상 외부로부터 비롯된 게 아닙니다. 그 냉전은 한반도 안에 ‘내재‘되었어요.” 교수님은 한반도 현안에 관점을 세밀히 투사하고 덧붙이셨다. ”한국인들은 어떤 사회와 정치제도를 추구할지 결정해야만 합니다. 어렵고 지리멸렬한 분투가 될 것입니다.”


교수님의 논문은 미·소 양국의 총과 대포로 치르는 혈과 육이 아닌, 통치 이데올로기와 전략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문화적 냉전’을 다루고 있었다. 1945년 이후 소련이 어떻게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교육과 대중문화”로 한국인 마음에 침투시켰는지를 다루었다. 그리고 그러한 중앙집권적관리가 어떻게 북한 통치 방식이 되었는지를 외교문서, 교과서, 그리고 팸플릿을 통해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한국인의 사회문화적 정서에 기민치 못한 미국이 이 마음의 전쟁에서 어떻게 대패했는지를 자조적으로 담았다.

한반도의 문화적 냉전은 끝났는가? 미국 교수님의 ‘냉전의 내재화’는 더 이상 미·소 양국을 떠나 한국인의 상식과 의식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며, 아직도 치열한 전쟁 중이라는 의견에 나는 동의하게 되었다.

다양성이란 이름 아래, 냉전은 계속될 수 있다. 386세대 한 교수님은 “냉전 이데올로기로 편협하게 보지 마세요. 주사파 담론은 독선적 태도입니다. 당을 짓고 비하하고 한쪽으로 몰아가는 비겁한 자세죠.” 동시에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교수님은 이 의견에 다른 의견을 표명하는 이들을 “수구꼴통·극우·매국노·친일·일베”로 한마디로 요약했다.
평화의 미명 아래, 문화적 냉전은 지속될 수 있다. 평화통일 활동가들에게 물었다. “독재 정권과 평화 협약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요?” 한 분은 대뜸 “그럼 전쟁을 하자는 거니?” 되물었다. 어떤 분은 나를 “적폐”와 “미국 승냥이구나.”라고 매도했다.

정작 다양성과 포용을 주장하며 그에 의문을 가하면 적폐로 낙인찍는 희한한 포스트모더니즘. 회색 옷으로 단장한 흑백논리. 평화의 방법을 질문하면 전쟁광이란다. 가장무도회에 등장한 이분법은 어쩌면 한반도라는 특수 맥락 속에서 자란 또 다른 ‘문화적 냉전’일 수 있다.

결국, 모든 전쟁은 고지 탈환을 위한 정통성 싸움이며 문화적 냉전 또한 그렇다. 교수님의 마지막 한마디, “한국인들은 어떤 사회와 정치제도를 추구할지 결정해야만 합니다. (Koreans must decide what kind of society and political system they want.)” 종전 선언의 끝은 선택과 결정이다. 이후에는 승자의 역사만 기록될 뿐이다.

공감과 연대를 허무는 적대적 담론은 입 다물라는 이에게 대한민국 헌법 제 4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역시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자 청산의 대상인지 묻고 싶다. 또한 자유민주적 질서와 시장경제를 김일성·김정일 유일사상의 신정 통치 그리고 시장전면통제와 어떻게 조화시킬지 듣고 싶다.

독도 상공에서 대치한 한·일·중·러 전투기의 각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전쟁의 축소판이 듯 내 외부에서 계속되고 있다.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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