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대강 보의 운명

2019-07-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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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대규모 논농사가 처음 일어난 곳은 백제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따르면 백제 초기에 논농사가 시작되었다고 돼 있다. 논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관개 시설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가 백제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저수지가 전북 김제에 있는 벽골제로 비류왕 27년인 기원 330년에 만들어진 이 저수시설의 초석은 아직도 남아 있다. 고대 수리시설 중 가장 규모가 큰 벽골제는 대한민국 사적 111호이기도 하다.

그 후 700년 동안 호남지역 물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이 저수지는 고려 인종 때 철거 위기를 맞는다. 왕의 병이 악화하자 이것이 벽골제 때문이란 무당을 말을 믿고 고려 조정이 파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태종은 대대적인 증축공사를 벌여 17개의 제방을 새로 짓는다. 호남이 한반도의 곡창 노릇을 한 것은 벽골제를 비롯한 수리시설 덕이다. 벽골제는 임진왜란으로 파괴돼 사라지고 만다.

그 후 4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문제를 놓고 한국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보 해체작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방정부들이 이에 반발하고 나서고 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세종시의회 의장은 “여론을 고려해 세종보 해체는 일정 기간 결정을 유보하자”며 “2,000억원 넘는 예산이 투입된 세종보를 다시 비용을 들여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역을 지역구로 갖고 있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춘희 세종시 시장도 이 문제에 대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인근 공주보도 마찬가지다. 공주 시의원 12명 전원은 ‘공주보 철거 반대 결의문’을 채택했고 공주시민의 98%가 이에 반대하고 있다. 나주 시의회도 민주당 소속 의원 12명과 무소속 1명 등 13명이 발의한 ‘죽산보 해체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 문제와 이해가 직결된 지역 주민들과 의회가 압도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철거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가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업용수 공급에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환경단체들은 환경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보 해체를 고집하고 있다.

이들 보가 자연 생태계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일부 사실일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처럼 흐르는 물보다 수질이 떨어질 수도 있고 수문이 물고기의 이동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가뭄이 들었을 때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해 줄 시설의 마련이다. 논에 물이 없어 애써 가꾼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보 해체 주장은 함부로 할 수 없다.

자연스레 물이 흐르게 하는 것이 목표라면 수문을 개방하면 되는데 굳이 이를 철거하겠다는 것은 이명박 정부 사업에 대한 화풀이라 볼 수밖에 없다. 보와 저수지가 자연을 해치고 환경을 파괴한다면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댐은 철거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하면 환경은 보존될지 몰라도 한국경제와 사회는 파탄에 직면할 것이다.

인류 4대 문명은 모두 큰 강 유역에서 일어났고 치수와 농업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와 환경단체는 무리한 보 철거 주장을 하루 속히 거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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