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나를 찾아 떠난 여행
2019-07-18 (목)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몇 달 전, 북클럽에서 줄리아 카메론(Julia Cameron) 의 ‘아티스트 웨이(The Artist’s Way)‘라는 책을 읽으며 만약 각자 자서전을 쓴다면 어떤 내용이 좋을지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평범한 가정 주부로 살다가 쉰이 넘어서 정원 가꾸기에 관심을 가졌던 북클럽 리더의 어머니는 늦은 나이에 4권의 책을 편찬하고, 얼마 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관련 잡지에 매달 글을 보내는 열정을 보였다고 했다. 그 4권의 책은 가족들에게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내게는 자서전이란 말이 너무 거창하게만 들렸다.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내 삶의 흔적들이 남길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별할 것도 없고 읽을 사람도 없을 텐데 굳이 책으로 펴내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았다. 그냥 간단하게 가족들을 위한 유서 한 장 정도 남기면 충분하다고 말하고서 집으로 오는 내내 괜시리 마음 한쪽이 휑한 느낌이었다. 인생이 의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삶의 피곤함과 나태함으로 잠시 나를 잊고 살아온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일보 ’여성의 창‘은 그런 내게 뜻밖의 보너스와 같았다. 어느 날 망설임 끝에 호기심으로 시작하게 된 이 글쓰기는 반갑게 예전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12주간의 여행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내 인생 곳곳의 이야기들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나하나의 제목들 속에 꾹꾹 눌러 담긴 추억와 감정들은 훗날 내가 꺼내보게 될 소중한 선물 보따리가 될 것이다. 주변의 반응들도 생활의 재미를 더하는 활력소였다. 가끔 글을 읽었단 인사도 들었고 신문에 나온 글을 보며 놀라던 아이들의 반응도 기분 좋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도 글을 보며 반가워했다. 내가 이곳에서 10년 넘게 알고 지낸 지인들은 첫 글을 올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열렬히 공감하고 응원하며 기꺼이 나의 감정평가단이 되어 주었다. 남편도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손수 신문을 들고 와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나의 글을 음미하며 미소로 화답해 준다. 이 12주의 아름다운 여행은 다음 주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부담없이 진솔하게 자신의 얘기를 써 달라던 담당자의 당부의 말이 기억난다. 그 진실함이 소박하지만,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였던 것 같다. 다음 분께 이 여행 티켓을 넘기며 과연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