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헤미안 클럽

2019-07-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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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클럽’은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미국 상류층 남성들의 프라이빗 사교클럽이다. 1872년 예술가, 변호사, 언론인들이 모여 창립한 이 클럽은 처음에는 문화예술 모임이었으나 차츰 정치가와 군 장성, 기업가와 재벌들이 가입하면서 조직이 커졌다.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비롯해 FBI와 CIA 국장들, 헨리 키신저, 월터 크롱카이트, 찰스 슈왑, 마크 트웨인 등 보수파 백인 엘리트들이 역대 회원이었고, 현재는 회원이 2,500명에 이른다.

1882년에 이 클럽을 방문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내 평생에 이렇게 옷 잘 입고 기름이 줄줄 흐르고 사장님처럼 생긴 ‘보헤미안’(집시)들을 많이 보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클럽은 매년 여름 소노마의 보헤미안 그로브, 2,700에이커나 되는 방대한 레드우드 숲속에서 2주 동안 수양회(retreat)를 갖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양회란 다름 아닌 남자들끼리 실컷 놀고 마시고 떠들고 릴랙스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네트워크도 다지는 기회를 말한다. 매년 실시하는 의식 중에는 모든 걱정을 다 태워버리고 놀자는 ‘염려의 화장’(Cremation of Care)이란 것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행사는 철저히 외부인의 접근 금지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회원 모두가 함구하기 때문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동안 나온 얘기들로는 파티가 있고, 음악회와 연극, 강연과 정치토론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비밀조직을 방불케 하는 컬트 집단과 비슷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연히 여성운동가와 사회운동가들이 이 클럽을 좋아할 리가 없다. 매년 캠프가 열릴 때면 보헤미안 그로브 앞에서 성적 불평등, 경제 불평등, 사회정의 이슈를 외치며 시위를 열고 여성회원을 받아들이라는 압력도 넣지만 147년 역사의 이 막강한 단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보헤미안 클럽이 최근에 좀 색다른 이슈로 언론에 등장했다. 오는 7월10~28일 열리는 수양회를 앞두고 “그런 행사에 셰리프가 시큐리티 계약을 맺는 것이 과연 옳은가”하고 소노마 카운티의 여성 수퍼바이저 셜리 제인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공공연히 여성을 차별하는 클럽과의 계약에 이용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여기에 보헤미안 그로브를 지역구로 가진 린다 홉킨스 수퍼바이저도 합류하고 나섰다. 홉킨스는 이 지역구의 첫 여성 수퍼바이저로서 보헤미안 수양회에 초청받지 못한 최초의 수퍼바이저다. “내 지역구에 있는 2,700에이커에 내가 한 발짝도 들여놓을 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불만이다.

이 논란은 결국 계약을 승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 14년 동안 수양회 시큐리티 계약을 승인해온 수퍼바이저 위원회가 15만1,500달러의 수입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란게 2~6명의 셰리프가 입구를 지키거나 시위대를 저지하는 일이다. 만일 계약을 거부하면 보헤미안 측은 더 저렴한 사설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만인 것이다.

미국에는 남성전용 소셜 클럽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여성전용 프라이빗 클럽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모임에 굳이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이성이 끼어들어가는 것이 좋을까? 여자들끼리 놀고 싶을 때가 있듯이 남자들끼리만 놀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해악이 되지 않는 한 각자 놀도록 놔두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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